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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기행'신경림 시인 별세민중시의 장을 연 신경림(89세) 시인이 22일 별세. 22일 오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신경림 시인은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민중시인으로 꼽히는 문인이다. 1935년 4월 6일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고,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 ‘묘비’ 등의 작품 추천 등단.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 도시에서 밀려난 서민, 정처 없는 유랑민 등 민초들의 애환과 굴곡진 삶의 풍경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그는 평생을 '민중적 서정시인'으로 살았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갈대' 전문) 시 '갈대'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독과 고뇌를 탁월한 시적 감수성으로 포착해 서정적이고도 대중적인 언어로 길어 올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즐겨 찾는 국민 애송시 '가난한 사랑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친숙한 말들로 가난과 상실을 아프게 노래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을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이 시는 쓰러지고 짓밟힌 약한 존재들, 흔히 '민초'(民草)라 불리는 기층민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온 고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찍이 신경림의 시 세계를 두고 "그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련다는 명료한 자의식으로 정체성의 징표를 삼으려 했다.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대변자 되는 것이 시인의 소명이라는 자기부과적 계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농무' 이후의 시편들이 그러한 점에서는 회의 없는 신앙고백으로 일관돼 있다"고 쓰기도 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시 '목계장터'에서) 그의 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목계장터'에서 감지되듯이 떠돌이, 방랑, 바람, 유랑과 같은 말이다. 가난하고 척박한 대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 정처없이 떠도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애환을 평이하고 간결한 언어로 노래한 것은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류다. 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등단한 시인은 그러나 등단 직후 1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대신 그는 강원도와 충청도 등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광부, 농부, 상인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이때 각양각색 사람들의 고되고도 보람된 삶을 뼛속 깊이 체험한다.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은 이후 그를 민중시의 대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시인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문학적 토양이 된다. 그는 이후 서사 장시, 기행시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시를 계속 선보임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 소재의 다양화 측면에서도 한국 시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반적으로 대지에 밀착한 삶의 언어로 쓰인 신경림의 작품들은 당대의 문학과 사회 현실을 하나로 묶는 '민중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시발점이 바로 내년이면 출간 50년을 맞는 그의 첫 시집 '농무'였다. 이 시집의 표제시 '농무'(農舞)에서 '농무'는 농민들이 풍물놀이에 맞춰 추는 춤사위를 뜻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춤사위가 한바탕 지나간 뒤의 농민들의 신명과 울분을 민중적 언어로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시 '농무'에서) 문학 외에 신경림의 공적인 삶의 또 다른 주요 축은 민주화 운동이었다. 군부독재의 칼날이 서슬 퍼렇던 1980년대에 시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민주화청년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족민주통일운동연합 중앙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상임의장 등 재야 운동단체들에서 자리를 맡아 반독재 투쟁을 펼쳤다. 이런 활동은 1990년대에도 이어져 대표적인 진보성향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마지막 시집은 출판사 창비에서 2014년 나온 그의 열한번 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이었다. 창비는 1975년 3월 그의 첫 시집 '농무'를 시선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간한, 그와는 아주 인연이 깊은 출판사다. 고인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에서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인생의 마지막 장(章)에 다다른 시인이 자신의 삶과 문학 전체를 담담하게 요약한 듯한 시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시인은 그렇게 한번도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 않은 채 평범한 사람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다가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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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한진옥·한순옥·전황·박성옥, 조선춤방 펼친다 21일부터시대를 관통하는 우리 시대 예인들의 무대, 국립국악원 ‘일이관지(一以貫之)’ 5월 21일부터 3일간 ‘조선춤방Ⅱ’ 열린다. 예술로 이치를 꿰뚫은 우리 시대 예인들의 무대인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5월 21일부터 3일간 열린다. 국립국악원은 작년 10월, 기획공연 '일이관지' 시리즈에 ‘조선춤방’이라는 부제를 걸고, 개화기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권번, 사설국악원, 고전무용교습소를 통해 전승된 한국 근현대 전통춤의 맥을 짚어보는 기획으로 평단의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문화재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춤맥을 무대로 소환하여 "전통춤 공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공연 ‘조선춤방Ⅱ’는 전통춤의 맥락을 더욱 확장하여 국경을 넘어 해외로 이주한 디아스포라의 춤맥과 신무용 계열의 춤맥까지 포괄하여 조망한다. 21일은 광주의 한진옥 춤방과 부산의 김동민 춤방 무대이다. 안무가 김온경이 김동민의 동래입춤·산조춤·승무를, 김자연이 한진옥의 남도입춤·살풀이·호남검무를 펼친다. 김동민은 대지주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부산에 최초의 민속무용학원을 열고 민속춤을 체계화하고 많은 후진을 양성했던 인물이다. 문화재 비지정 종목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영호남 춤의 두 거장이 소환된다. 22일은 한순옥 춤방, 전황 춤방, 박성옥 춤방의 무대가 열린다. 한순옥과 전황은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 출신으로 한국전쟁기에 월남하여 한국무용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진옥은 ‘호남의 이매방’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춤실력과 북장단으로 유명했던 춤사범이다. 박성옥은 최승희의 전속 악사로 알려진 인물로 춤의 창작에도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초대 단장을 지냈으며 당시 탄생한 작품들이 지금도 이 예술단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유일한 후계자였던 김춘호의 춤맥을 오철주의 춤으로 이번 공연에서 만날 수 있다. 리틀엔젤스예술단도 특별출연한다. 23일에는 한국 근대춤의 선구자 최승희, 조택원, 배구자의 후계자들이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춤맥을 조명한다. 특히 이 날은 최승희의 제자로 중국 조선족 무용을 개척한 박용원 춤방과 배구자의 제자로 하와이에서 한국춤을 지켰던 한라함(Halla Huhm) 춤방을 통해 이국땅에서 이어가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춤맥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신무용의 거장 조택원의 제자이자 부인이었던 김문숙의 대표작 '대궐'과 '가사호접'도 기대되는 무대이다. 공연은 오는 21일(화)부터 23일(목)까지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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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88)<br>김근희 명인의 '경기검무' 춤사위경기검무 경기검무(京畿劍舞)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 악기의 반주에 맞춰 칼을 들고 휘두르며 추는 춤 및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한다. 경기검무는 활달한 기상과 강한 기질이 배어있는 춤으로, 다른 지역 검무와 다르게 홀 춤 검무와 대무 형식의 검무 모두 전승되고 있다. 경기검무는 무용수가 칼을 바닥에 내리고 절을 하며 시작된다. 무용수가 인사를 마치면 음악이 시작되고 정적인 춤사위가 편안함을 전한다. 그러나 칼을 손에 쥐고부터는 기세가 달라진다. 검이 내뿜는 소리와 광채가 역동성과 긴장감을 더한다. 검무 공연의 전반은 정적이고 칼을 들고 추는 후반부는 동적으로 음양의 이중적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돼 있다. 공간 사용에 있어서는 대지지향성과 위로 도약하는 역동성을 동시에 지니며 대형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춘다. 경기검무의 칼춤사위에 나타나는 특징은 양팔을 수평으로 펴서 칼을 돌리는 옆돌림사위가 많고 상대방과 만나 힘을 겨루는 듯한 동작이 궁중검무에 비해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한 음·양머리 윗사위는 경기검무만의 독특한 칼춤사위이다. 김근희 경기검무는 한성준, 강선영, 김근희로 전해졌다. 2011년 김근희를 보유자로 경기무형문화제 53호로 지정됐다. 김근희 선생은 10살에 김백봉 선생의 춤을 보고 반해 부모님을 졸라 무용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1987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 ‘0의 세계’로 대상과 연기상을 받았다. 이후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등의 자리에 있으면서 국내외를 무대로 전통무용극뿐 아니라 전통과 창작이 조화를 이룬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대학 강단에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기며 수많은 춤꾼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김근희 이력 1946년생 경기무형문화제 53호 보유자(2011년 6월17일) 무용학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무용과 졸업 대진대학교 무용 예술학부 교수직 역임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역임 경기검무보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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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정기연주회 ‘잇고, 있다’오는 5월 1일과 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제66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정기연주회 ‘잇고, 있다’이다.‘잇고, 있다’는 우리가 올곧게 ‘잇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음악과 현재 우리 곁에 ‘있는’ 현대의 창작음악을 함께 연주함으로써 음악적 탐구와 소통을 실천하며 시대를 이어가는 서울대 국악과의 의지를 담은 정기연주회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주최하고 서울대학교발전재단과 총동창회, 동양음악연구소가 후원한다.서울대 국악과는 1959년 창설 이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해 수많은 국악 예술인을 배출했다. 매 정기연주회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기르고 음악적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했다. 또한 해외교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예정된 이틀의 공연 중 1일은 국악의 세계화를 촉진하고 해외 교류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유홍림 서울대학교 총장 외 각국 대사와 문화예술계의 주요인사들이 참석한다. 연주회에서는 가곡 태평가와 가야금 산조, 소리와 춤으로 구성된 화초사거리, 김대성 작곡 대금 협주곡 ‘풀꽃’과 토마스 오스본 작곡 거문고 협주곡 ‘Rhythm of Earth, Rhythm of Heaven(대지의 파도, 하늘의 울림)’, 학생들이 직접 구성한 공동 창작 앙상블 ‘TroubleII-Ghost Note’, 타 전공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한 융복합 작품 ‘Le Petit Prince’까지 특별하고 의미있는 무대를 선보인다.노은아 서울대학교 국악과 학과장은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음악의 저변확대와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앞으로 다양한 국가와 문화교류를 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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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0)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고려말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이 읊은 매화시이다. 매화를 노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로 알려져 있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골짜기는 필시 고려말의 혼란기를 뜻하는 것이다. 혼란의 구름이 머물러 있으니 눈 속에 피는 설중매를 마주할 길이 없다. 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나라의 혼란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석양에 홀로 청청하게 서 있었다는 행간을 읽으면, 깊은 눈 속에 매화가 피어있듯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와중의 격변을 그려볼 수 있다. 그저 눈 속에 피는 한 송이 매화를 읊은 것이 아니다. 이색이 누구인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더불어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이 길은(吉隱)이다. 큰 스승님들이 지어주신 대여섯 개의 호를 나누어 쓰다가, 한 페친의 권유로 시방은 이 이름을 내 호로 사용하고 있다. 어찌 삼은의 언저리라도 갈 수 있겠는가만, 길하고 풍요로운 본질을 그윽이 품고 초야에 은닉해 남은 삶을 꾸리겠다는 마음만은 변함없다. 옛 선비들이 앞다투어 설중매를 노래하고 그 기운에 의탁해 세사에 더럽혀진 마음을 씻고자 했던 이유도 대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2008년경 본 지면에 소개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졸저 '남도를 품은 이야기'(다할미디어, 2022) 한 대목을 다시 가져와 본다. "역학적으로 보면 겨울은 곤음(坤陰)에 해당한다. 시간을 분절하고 공간을 나눠 오행의 의미를 부여할 때 만물이 생장을 정지하는 죽음의 계절을 겨울로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해 뜨는 동쪽을 새싹의 색깔인 청색으로 정하고 해가 지는 서쪽을 색깔 없는 흰색으로 정하는 이유와도 같다. 그래서다. 매화는 죽음으로부터 소생하는 혹은 환생하는 재생의 꽃이다. 하고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단연 매화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고향 산은 아득히 음기가 서려 있고 대지의 바람은 차고 눈은 깊이 쌓였는데 창을 올리고 편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 가지 끝에 흰 것 하나, 하늘 뜻을 보이네 삼봉 정도전이 노래한 '매설헌도(梅雪軒圖)'이다. 나는 이 시를 호우의 철학으로 풀이하여 정몽주가 읊은 봄비와 비교해본 바 있다. 겨우내 곤음의 동굴 속에서 검은 피와 붉은 피를 튀기며 새로 올 봄에 대한 혈전을 치렀을 그들의 심경을 읽어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삼봉 정도전은 이후 이성계를 도와 유교 조선을 기획하고 건국에 성공한다. 주역을 읽으며 올려다본 가지 끝의 흰 것, 그것이 새로 맞이한 삼봉의 봄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목은 이색의 시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분명 백설 잦아진 골 양지바른 어느 언덕에 설중매 만발했을 텐데, 기울어가는 석양을 홀로 바라보며 갈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고려가 망하지 않고 심기일전 불교와 무신권력을 혁명했더라면 목은은 눈 속의 매화를 발견한 기쁨을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삼봉을 승리자로만 읽는 것은 아니요 목은을 패배자로만 읽는 것도 아니다. 목은은 줄곧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채용해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기여한다. 유교와 불교의 융합을 주장함과 동시에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해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 불교의 폐단을 줄이려고도 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도로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한다. 이성계 세력이 권력을 잡자 여러 곳으로 유배되었고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에 연루되어 또 유배 생활을 한다. 이성계의 끊임없는 출사 종용이 있었지만 끝내 고사하고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생을 마감한다. 문하에 충절을 지킨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조선왕조 건국에 공헌한 제자들도 많이 배출된다. 정도전, 하륜, 윤소중, 권근 등이 그들이다. 변혁이나 혁명의 의미를 서로 달리 해석한 때문이었을까? 홍매화는 어떻게 붉은 꽃이 되었을까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한 임금이 매화꽃을 어찌나 사랑했던지 매화라는 궁녀까지 총애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기한 신하들이 모의하기를, 매화가 역적들과 밀통해 임금을 죽이려 한다고 했다. 매화는 참소를 받고 처형되었다. 매화꽃 때문에 궁녀 매화를 잃었다고 생각한 임금은 전국의 모든 매화나무를 없애라고 명을 내렸다. 하지만 어떤 시골에서 매화나무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한 소녀가 몰래 매화나무를 길렀다. 발각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다. 소녀는 이것이 일반 매화와는 다른 빨간 매화라고 우겼다. 신하들이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소녀는 매일 밤 손끝을 매화 가시에 찔러 피를 냈다. 꽃망울에 붉은 피를 흘려 붉은 기운을 넣기 위함이었다. 날마다 피를 흘린 소녀는 이내 죽고 말았다. 봄이 되자 놀랍게도 그때까지는 전혀 보지 못하던 홍매화가 피었다. 매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주로 충절이나 정절, 고결한 의지, 강직한 품성 등을 나타내는 데 소환되는 특급 콘텐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양의 시인묵객들이 매화를 노래하거나 그림으로 그리고 혹은 도자기 등의 예술품으로 표현했던 이유도 이런 심성을 흠모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잉태와 모성의 여신성(女神性), 봄이 상징하는 재생과 부활의 에너지들이 응축된 콘텐츠라는 점 재론이 필요치 않다. 어찌 이것이 옛일에만 국한되겠는가. 마침 우리집 안마당을 둘러보니 설중매가 이미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정초 한발의 서슬이 채 가시지 않아서일까. 봄이 아득하기만 하다. 문득 석양에 홀로 서서 갈길 몰라하는 목은을 마주한다. 눈 녹는 그 길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올해도 봄날의 정령 매화가 지천으로 필까? 정치로 말하자면 격조는 언감생심 차마 부끄러워 설중매를 거론할 수조차 없는 현실인데 말이다.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살려고 안빈낙도를 꿈꾸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듯하다. 포은과 목은, 삼봉의 혈전들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곤음의 시간, 그저 매일 밤 손끝을 매화 가시에 찔러 피를 내야 할 모양이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달리 해석하는 것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봄의 전령 매화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는 무모함을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퇴행이다. 매월당 김시습의 探梅 큰 가지 작은 가지에 눈이 모두 쌓였는데 따뜻한 기운 알아내고 차례대로 피는구나 고운자태 곧은 마음이라 비록 말이 없지만 남쪽 가지엔 봄의 정취 가장 먼저 어리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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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29)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한강의 끝자락 조강포에서 터울림을 한 것이 4년 전이다. 주지하듯이 조강포는 마금포, 강령포와 더불어 한강 하류의 3대 포구였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의 염하(鹽河)가 만나 한길을 이루고 서해로 접어드는 물길이다. 전라 충청의 모든 물류가 한양으로 나들던 길목이요 대중국 교류의 대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쉬었다가 한물을 올라가면 서울 마포다. 지금은 철책으로 막아버려 북쪽 땅끝이 되어버린 곳이다. 2018년 당시 나는 이곳을 중심으로 풍물활동을 하던 노나메기팀과 합류하여 조강포 나루표지석 앞에서 신년 마당밟이를 하였다. 땅을 울리니 터울림이요 바람을 더불어 울리니 공명(共鳴)이었다. 아시아문화연구원 김용국 원장과 만나 내가 제안을 하였고, 노나메기 대표가 응대하여 이루어진 쾌거였다. 분단 이후 최초로 조강포를 울렸던 쇠북소리는 북녘땅 어디까지 울려 퍼졌을까. 지난 2003년 장두석, 박병천, 박사규(기천 문주)선생님을 따라 백두산 정상에서 분단 이후 최초의 천제를 모셨던 기억이 새롭다. 땅이란 무엇일까. 국토란 무엇일까. 조강포에서 바라보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곳이 모두 북한이다. 우리의 울림이 얼어붙은 한강을 그윽하게 울려 평안도로 황해도로 울려 퍼졌을까. 분단 이후 최초로 울린 조강포의 터밟이, 울림(共鳴)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말 (사)나라풍물굿의 요청으로 특강을 하였다. 대주제는 '전환기의 풍물굿: 풍물굿이 변화하는 이 시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 갈 것인가'였고, 내 강의 주제는 '울림이란 무엇인가-대동의 공명론'이었다. 질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리토르넬로'를 소개하며 우리 농악의 '울림', 그 정체에 대해 설명한 강의였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의 대동(大同)이 집단주의나 전체주의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어쨌든 하고많은 다른 표현들 놔두고 왜 농악을 '울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통상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하고,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하는데, '운다'라는 표현이 '울음을 운다'의 뜻일까? 이론이야 많이 있겠지만 내가 주장해 온 결론을 말한다면, 더불어 울리는 일 곧 공명(共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맞울림과 더불어 울림에 대해서는 본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소개했으므로 구체적인 리뷰는 생략한다. 내 강의는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 농악의 기원, 특히 '울림'이란 공명의 본질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땔나무꾼 나를 초청한 (사)나라풍물굿은 2021년 나라터밟이 행사를 주도하고, 만북울림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 등 나라터 울림을 주도했던 그룹이다. 지난해 이들은 한강, 낙동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등 5개 강의 발원지와 하구를 찾아 샘굿이라는 이름으로 상생의 울림을 도모하기도 했다. 농악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시선이자 일종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나는 이들을 일러 천만 농악꾼(풍물꾼)이라고 표현한다. 본래 마을굿에서 연원한 농악을 염두에 둔다면 천만 아니라 이천만 삼천만 동호인을 보유한 집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다. 이들이 행하는 활동과 운동이 사실은 '농악'의 본질을 연행해 온 것이고, 곧 공명의 울림을 실천해왔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지면상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고, 농악(農樂)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만 붙여두기로 한다. 농악(農樂)이란 이름에 대하여 농악(農樂)이란 이름이 일제강점기 우리 풍물을 농사(農事)에 제한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들 한다. 농악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정병호의 '농악'에서도 그렇게 주장했고, 여타 전문 연구자들도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래서 대안으로 사용한 이름이 '풍물'이다. 과연 그러한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풍물을 축소하여 농악이란 이름으로 호명한 것이 아니라, 농악을 오히려 축소하여 풍물이란 이름으로 호명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물론 '풍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저간의 역사와 활동은 그것대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농악이란 이름 혹은 울림이라는 정체를 올바로 지적해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정초의 마당밟이와 지신밟기에 포섭된 벽사(闢邪)적 기능뿐 아니라 대지와 천상의 신을 울리는 신명의 기능을 염두에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도 문화재위원 김희태가 오랫동안 이를 주장해왔다. 나는 그가 발굴한 여러 자료를 통해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뿐만 아니라 그 맥락에 대해 더욱 견실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농악이란 용어가 사용된 내력을 몇 가지만 살펴본다. 장흥사람 안유신(安由愼, 1580~1657)이 지은 '유두관농악(流頭觀農樂)'은 보성에서 농악을 보고 지은 시다. 16세기에 농악이란 이름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대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농악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충청도 서천 유생 최덕기(崔德基, 1874~1929)가 쓴 향촌일기 <갑오기사(甲午記事)>에도 농악이 나온다. 김제출신 근대학자 석정 이정직(1841~1910)의 저서 <연석산방미정시고(燕石山房未定詩藁)>에는 시 제목을 아예 '농악'으로 뽑았다. 1914년까지 살았던 보성선비 이교문(李敎文, 1846~1914)의 <일봉유고(日峯遺稿)>에도 '농악'이란 제목의 7언 율시가 있다. 동학과 관련한 석남역사(石南歷史) 및 후손들의 증언집에도 농악이란 이름이 빈출한다. 여기에 마당밟이 지신밟기를 포함한 마을굿(당산굿), 두레풍장, 나례희, 군사 훈련, 유랑 연희, 무격의례 혹은 탈놀이 등 수많은 장르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농악이다. 관련 내용은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강상헌은 지난해 농민신문 칼럼에서 갑골문 농(農)자를 천문(天文)에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농사는 살림의 다른 이름이다. 죽임의 반대말이 살림이다. 글농사, 밥농사 등 한 해 농사에 비유하는 수많은 언설들이 이를 말해준다. 농사와 농악을 농업만으로 이해했던 오류를 시정하는 것이 터울림 혹은 땅울림이라는 공명의 방식을 제대로 인식하는 첩경이다. 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난해 칼럼에서 해남의 소농지원 사업을 소개한 바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왕에 해왔던 지력 약탈농업, 소농 수탈농업 등 땅의 기운을 빼앗고 마을의 정기를 빼앗고 종국에는 지역이 소멸해가는 기왕의 시스템을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농악이란 이름을 너무 농업에 의존한 호명으로 격하시켜온 것 아닌가? 농사의 효용만을 따져, 땅을 수탈하는 농업, 소농과 가족농을 죽이는 농업구조로 재편해온 것처럼 말이다. 어디 농업만 그러하겠는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이 다르지 않다. 예컨대 농악이 가진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못한 채 어떤 주된 기능만을 내세우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와 공명의 본질에 대해 극구 이야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악의 출처가 그렇고 생성의 역사가 그러하며 재구성된 맥락이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꿈꾸어 본다. 혹여 이번 대통령에 당선된 누군가 취임식 할 때, 덩더꿍 꽹과리 들고 덩실덩실 춤추고 나올 수는 없을까?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가 취임할 때, 저들 고유의 춤을 추며 나왔듯이, 자신을 괴롭혔던 교도관과 그의 친구들을 귀빈석에 모셔 자랑스럽게 소개했듯이, 그런 농악 한마당 취임식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편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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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연출가 김삼일 "60년 버틴 극단의 힘? 진지하게 연극할 뿐"(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연극은 진지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작품을 진지하게 올리면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창단한 은하 극단이 그래서 60년을 버틴 것이죠." 연극계 원로를 조명하는 축제인 '늘푸른연극제'를 준비하는 연출가 김삼일(82)의 목소리에서는 뚝심을 느낄 수 있었다. 5일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 연출은 연극에 관심이 없는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묻는 말에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연극의 불모지였던 경북 포항에서 60년간 지방 연극 문화를 이끈 그의 말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달 6∼28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리는 늘푸른연극제는 '플레이 어게인'(play again)을 주제로 원로 배우, 연출가, 극작가 등을 조명하는 작품 4편을 소개한다. 연출가 부문에 선정된 김 연출은 1963년 KBS 포항방송국 성우로 입사한 이듬해 극단 은하를 창단하며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대지의 딸들', '별은 밤마다' 등 지금까지 연극 총 169편을 연출했고 1983년 한국연극예술상과 2004년 이해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그의 노력으로 포항에 뿌리를 내린 극단 은하는 1983년 포항시립극단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리얼리즘 연극을 표방하는 김 연출은 대본에 충실하게 작품을 올린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포항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할 당시 연극을 처음 보는 고등학생들도 연극을 즐겼다"며 "오늘날 연극처럼 이야기를 비트는 일 없이 책에 나오는 그대로 무대를 올렸다. 폼을 내거나 재면서 연극을 올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연출은 6∼7일 황혼기에 접어든 세 친구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연출한다. 그는 "세 사람의 연기자가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0∼14일 열리는 '비목'에는 원로배우 백수련이 출연한다. 할머니 윤구가 전쟁에서 전사한 둘째 아들의 비목을 찾아 다니는 과정을 담는다. 백수련은 연습 기간 낙상 사고로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는 등 연습에 지장을 겪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한다. 백수련은 "출연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는데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며 "연기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배우로 끝까지 책임을 지려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어 원로배우 윤문식과 최주봉, 이승호가 출연하는 연극 '폐차장블루스'가 18∼21일 공연된다. 거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함께 한 세 노인이 해묵은 오해로 갈등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윤문식과 최주봉은 1964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6기 동문으로 만난 뒤 60년간 맞춰온 호흡을 선보인다. 폐막작으로는 24∼28일 이현화 극작가의 '누구세요?'가 공연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채 각자가 집주인이라 주장한다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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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몽골의 전통 가무악<1>대초원 호령하던 몽골 기마민족의 전통문화와 춤 2017년 9월 16일 몽골 국제울란바토르대학 초청으로 한국어 전공학생들을 위한 전통문화 특강과 공연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몽골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2년 용인대 재직시절 대학원생들과 문화탐사를 다녀온 지 15년이 흘렀기에 자못 궁금한 것이 많았었다. 과거 공항에 도착했을 때 초라한 몽골수도의 현주소를 보고 놀랐다. 세계사에서 가장 넓은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고 동서양 교류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칭기즈칸의 제국을 생각할 때 총인구도 200만 남짓(현재는 300만명)하였고 울란바토르 도시 규모도 60만 정도(현재는150만)로 기억되는데다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가 도시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고층빌딩은 별로 구경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발전과 변모된 모습이 궁금하였다. 그런데 밤늦게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가는 길목의 조명들이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국제 울란바토르대학교 초청 ‘한국의 탈춤’ 특강 및 시연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는 빌딩도 많아졌고 시내 도로도 정비가 잘 되어있었다.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칭기즈칸(과거에는 수흐바타르 광장, Sukhbtaar)광장이었다. 담딘 수흐바타르(Дамдины Сүхбаатар)는 몽골에 세운 러시아 백군의 괴뢰정부를 1921년에 격파하고 조국을 해방시킨 개국공신으로 독립영웅으로 받들고 있어 울란바토르 중심 광장에 수흐바타르의 동상이 서 있다. 점심을 한식당에서 마친 후에 국제울란바토르대학교로 찾아갔다. 대외협력처장이 일행을 맞이하여 총장접견실에서 총장이 음료와 다과대접을 해주었다.한국인이 설립한 국제울란바토르대학교는 1995년에 한국인이 몽골에 세운 대학으로 35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한국어과인 단과대학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사립 대학교 중 상위권을 유지하며 몽골의 명문대학교로 칭해지고 있다. 학교가 발전한 배경에는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몽골의 다른 대학교에서 시작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선진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이라 들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대학에서는 흔한 ‘동아리’ 시스템인데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 간의 협동, 학문 이외의 분야에서의 발전을 도우며 오늘날 국제 울란바토르대학교가 명문대학이 된 배경에 기여했다고 한다. 5층 강당으로 올라가니 한국어과 학생 100여명이 일행을 맞이하였다. 대외협력처장의 간단한 소개에 이어 ppt를 준비하여 ‘탈과 탈춤’ 특강을 하였는데 몽골인 교직원이 통역을 아주 잘 해주어서 막힘없이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이어서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탈춤시연으로 취발이마당을 필자가 취발이 배역을 하였고, 샌님 미얄 포두부장마당을 보여주었다. 탈춤 워크샵으로 기본춤 따라 배우기를 한 다음 기념촬영으로 끝맺음을 하였다. 몽골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극장에서 펼치는 몽골 전통가무악 한마당 공식일정인 특강과 시연을 마친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원들의 다음 일정은 몽골 민속공연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식 건물 기둥마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멋진 분홍색과 흰색으로 채색한 아담한 건물이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National Academic Drama Theatre)임을 알 수 있었다. 촬영 허가를 받는데 미화 50달러를 요구하여 잠시 망설이다가 아쉽지만 지불하고 입장하니 앞자리는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2층 앞 가운데에 비디오 촬영기를 설치하였다. 2002년에 몽골을 방문을 했을 때는 통로까지 꽉 차 숨 막히던 열악한 소극장무대였지만 몽골 전통춤과 음악 공연이 끝난 다음 우리 일행들이 예술단장과 단원들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주며 격려했던 일이 생각나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황제 황후의 궁중춤' 군무 막이 올라가고 첫 무대는 세계를 제패한 칭기즈칸의 후예들로 장군복을 입은 장수들과 황후귀족들만이 쓰는 높은 모자 복타크(boqtaq)와 긴 치마복색을 한 귀족여인들의 합동군무로 장엄한 춤판을 열었다. 하수 쪽에서 장군들이 열을 지어 등장하고 상수 쪽에서 귀족여인들이 점잖게 등장하여 시종 느리고 위엄 있는 궁중춤으로 서막을 장식했는데 몽골 여러 부족이 힘을 합쳐 통일된 몽골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두금(Morin Khuur)과 후미(Khoomi) 연주 이어서 전통악기 ‘마두금(馬頭琴, 모린 후르, Morin Khuur)’과 피리 연주에 여성 2인조 ‘허미(Khoomi)’소리로 청량하면서도 대초원의 해맑은 바람소리 같은 몽골전통성악을 들려주었다. 마두금과 연주는 유네스코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유산)'으로 2008년 선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몽골 사람들의 일상에서 친숙하게 찾아볼 수 있고,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때로는 웅장하기까지 한 음색은 몽골 고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듣는 이에 따라 몽골의 초원에서 부는 바람 소리, 야생마가 우는 소리, 말발굽이 지축을 울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초원의 바이올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2008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후미(Khoomi)는 배에서 나오는 소리와 두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한꺼번에 한 사람이 내는 몽골전통 창법이다. 광활한 자연이 들어있는 노래로 바람소리, 동물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어있으며, 한 음으로 들리지 않고 두 개 이상의 음이 배와 목을 통해 동시에 발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몽골청년들의 춤 마두금 반주음악에 젊은 몽골남자들의 일상생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창작춤이었다. 핀 조명이 들어오자 가운데 몽골주택 게르(ger, 중국은 파오(包), 중앙아시아는 yurt) 형상처럼 뭉쳐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비추었다가 점점 조명이 퍼지며 한사람씩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하루일과를 준비하는 장정들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점점 음악이 빨라지면 움직임도 빨라지며 말을 타고 평원을 누비는 몽골남자들이 강인한 투지와 적응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몸집 좋은 젊은 남자 무용수들로 구성된 장정들의 활기찬 전통춤은 대단히 빠르고 역동적인 발놀림은 힘이 가득 찬 기마민족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어깨의 율동을 많이 이용하는 몽골 남자들의 춤사위가 우리나라의 어깨춤의 발상지임을 증명하듯이 비슷한 점도 발견하였다. 전통악기 합주와 후미(Khoomi) 이어서 8명이 연주하는 전통악기들의 합주와 남녀 혼성 후미(Khoomi)를 들려주었다. 몽골과 부랴트족의 전통악기인 모린후르(마두금, Morin khuur), 가야금과 비슷한 야트가(yatga), 해금과 같은 2현의 후치르(khuuchir), 월금(月琴)과 같은 3현의 샨즈(shanz, Chanza), 양금과 비슷한 여친(yoochin), 호른(horn)같은 에버부레(ever buree)와 플루트 등의 악기 연주와 반주로 진행하였다. 특히 마두금은 흉노 시대에 한 남자가 자기를 구해준 말을 그리워하면서 처음 만든 악기로 당시 나무로 말머리를 만들고 말 꼬리털로 두 줄을 만들어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두금 반주로 전통 복장의 몽골 여자 가수가 부르는 민요는 몽골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두금이 연주되고 몽골의 여인들이 몽골 초원의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몽골의 한 초원 안으로 초대받은 듯한 신비감을 느꼈다. 몽골의 서쪽, 알타이(Altay) 지방에서 시작된 이 몽골 특유의 후미의 소리는 초원에서 불어오는 맑고 청아한 바람소리처럼 시원하게 오다가도 갑자기 사람들을 초집중하게 하는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공연장을 채웠다. 대지를 울리는 듯한 저음과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한 맑은 고음이 동시에 발성되는 '후미'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마치 악기 소리처럼 들리는 고음과 저음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거나 또는 동시에 발성법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발성법으로 인해 모린후르(마두금, Morin khuur)와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되었다. 사발춤(Ayagatai bujig) 여성무용수들이 여러 개의 마유주잔이나 사발을 포개어 들고 천천히 양옆에서 등장하여 무대 앞에 잔을 내려놓고 몽골 전통춤사위를 보여주고 다시 각자의 술잔을 들어 객석을 행해 환영과 행운을 비는 덕담소리를 하였다. 마치 한국에서 궁중정재를 추다가 멈추어 창사(唱詞)로 왕업을 칭송하는 소리를 하는 것과 같이 환영소리를 한 다음 술잔을 머리에 얹고 묘기춤처럼 추었다. 불교의례춤 참(Tsam) 참(Tsam)은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풍년과 인간의 소원을 부처님께 기원하는 뜻으로 추는 의식무용이다. 먼저 백노인이 산신령처럼 하얀 수염에 대머리 큰 가면을 쓰고 하수 앞쪽에서 지팡이와 염주를 들고 등장하여 무대 중앙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느리게 걷다가 무릎들기를 하며 반복적으로 돌다가 상수 뒤쪽으로 가서 뒷막을 지팡이로 건드리자 뒷막이 올랐다. 여러 마왕과 동물탈을 쓴 참 배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곡예춤 몽골의 곡예는 특히 마상곡예와 인체곡예가 유명하지만 극장이어서 마상곡예는 한계가 있어 공연을 할 수 없었고, 연체동물처럼 유연성을 극대화한 2인 곡예춤을 보여주었다. 몽골의 동쪽지역에 사는 부족의 어린 소녀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곡예로 인체관절의 가동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묘기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관현악과 후미의 대합주 마지막 공연으로 몽골 전통악기로 이루어진 전통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대합주가 시작되었다. 대합주에는 지휘자가 등장하여 서양식 오케스트라 연주방식으로 칭기즈칸이 출전 당시에 연주하게 했던 대마두금과 서양타악기까지 등장하여 후미를 부르며 몽골인들의 삶의 애환과 행복을 전하는 연주를 하였다. 13세기에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전래된 우리나라 가야금인 야트가(yatga)도 대합주에서 대표 악기로 연주되고 있었다. 현재는 몽골악기 야트가로 연주하고 있지만 2002년 몽골에 왔을 때는 우리의 가야금을 그대로 수입하여 연주하고 있어서 우리일행 중의 가야금 연주자가 뒤풀이에서 한국가야금 연주법대로 연주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이 몽골 민속 관현악단은 주로 독주곡을 연주하는 많은 현악기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어렵다고 하나 각 현악기들이 특색 있게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관현악단 수준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몽골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과 예술단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극장 각 분야 예술단이 연합한 전통예술공연에 해당하는 것으로 웅장한 대극장 규모는 아니지만 깔끔한 중극장 무대였고 몽골예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예술무대였다. 90분 동안 몽골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무대예술로 승화시켜 악가무희(樂歌舞戱) 일체감을 형성한 점도 뛰어났다. 다만 전통문화를 예술로 재탄생시킨 점은 뛰어났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형식의 무대로서는 전통성을 살리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창작적으로 너무 꾸민 점과 마지막 관현악 협주가 30분을 넘게 차지하는 비중으로 관중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한 점이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매일 저녁 6시 공연으로 외국 관광객들에게 몽골의 공연예술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점과 객석을 가득 채운 극장분위기도 한 몫을 하면서 품격있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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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자연풍토적 배경과 지역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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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 2023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 행사 성료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원장 박기홍, 이하 문화원)은 중소도시를 순회하며 K-컬처를 소개하는 2023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 행사를 카흐라만마라쉬(8.30)와 이즈밀(9.1) 등 2개 도시에서 개최했다고 밝혔다. 카흐라만마라쉬에서는 지난 2월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피해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온이키슈밧 컨테이너 마을에서 아이돌 그룹 엠펙트와 국악 공연단 이영신의 소리타래 단원들이 지진 피해자들에게 치킨과 핫도그 등 한식을 나눠주는 행사가 진행 되었다. 컨테이너 마을의 어린이들은 트럭에서 나오는 500인분의 한식과 한국에서 온 공연자들을 보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고 연신 웃음을 띄었다. 컨테이너 마을의 주민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카흐라만마라쉬를 방문한 공연자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영신의 소리타래 그룹의 이영신 명인은 "오늘 행사를 통해 지진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즈미르에서 진행된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 행사에서는 아이돌 그룹 엠펙트와 이영신의 소리타래 그룹의 공연이 사반즈 문화센터에서 진행되었다. 사물놀이와 상모 돌리기, 가야금 연주 등 국악 공연을 접한 관객들은 연신 박수갈채를 보내며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아이돌 그룹 엠펙트의 무대가 시작되자 케이팝 팬들은 환호와 함께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공연을 관람하였다.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박기홍 원장은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 행사는 2013년부터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이 전세계 35개 한국문화원 중에 최초로 시작한 사업으로 튀르키예의 81개주 중 66개 주를 순회하면서 한-튀 양국의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고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들을 알리는데 힘써 왔다”고 하면서 "한국문화원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한국적 문화특수성에 세계적인 보편성을 융합해 콘텐츠와 스토리로 연결시켜 튀르키예에서 한류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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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 추정 왕궁지 발굴 조사 착수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공주 공산성 추정왕궁지 일대 학술 발굴조사에 착수한다.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공주시와 함께 공주 공산성의 체계적 조사를 실시해 백제 웅진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하고자 한다"고 12일 밝혔다.조사지역은 공주 공산성 내 쌍수정이 있는 추정왕궁지 일원이다. 조사기간은 이달부터 오는 12월까지다.공주 공산성 추정왕궁지는 넓고 평탄한 대지로 이뤄졌다. 해발 74m 내외로 공주 시가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다.이 지역은 1985년 공주대 역사박물관이 처음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와 연지 안에서 연꽃무늬 수막새가 집중적으로 발견돼 왕궁지로 추정됐다. 2019년 보완조사에서는 왕궁지 동쪽 출입시설이 새로 확인됐다. 특히 출입시설 주변으로 궐(闕)시설이 확인됐다. 궐은 왕이 머무는 궁궐 문 양옆에 높게 쌓아 설치한 대다.이는 왕궁 구조 파악의 계기가 됐다. 지난 2020년 문화재청은 '백제왕도 핵심유적 공주지역 발굴조사 기본 계획'을 세웠다. 2022년 조사에서는 각 20m, 30m 길이의 장랑식건물(長廊式建物) 2동이 조사됐다. 장랑식건물은 궁전, 사찰에 중심건물과 주변을 둘러싸도록 길게 조성된 건물이다.그 결과, 추정왕궁지 내부가 중심공간과 생활공간, 그리고 의례공간으로 구분하는 계획적 공간배치로 이뤄졌음이 밝혀졌다.남쪽 연못 주변 골짜기를 메운 토목공사 흔적에서 현재 추정왕궁지 안에 사각형 평탄지가 백제 웅진기에 계획적으로 조성한 곳임이 확인됐다.이번 발굴조사 목적은 공산성 내 백제 추정왕궁지의 정확한 규모 및 구조 파악과 복원을 위한 근거자료 확보다.문화재청은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부분적으로 확인됐던 추정왕궁지의 전체 범위와 외곽시설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왕궁지 조성을 위한 백제 사람들의 토목기술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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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13>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정회석 보성소리 <강산제 심청가 완창> 엄청 반가운 음반이다. 거의 4년 만에 선보이는 판소리 완창음반, 정회석 명창이 부르는 보성소리 <강산제 심청가> 4장 음반이다. 정회석 명창은 2008년에 실황녹음으로 악당이반에서 <심청가>(3D)를 출반한바 있다. 15년 만에 선보이는 음반이다. 정회석 명창은 전남 보성 출생으로 부친 정권진 명창, 조부 정응민 명창 등 판소리 가문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판소리와 함께 일상생활을 시작한 명창이다. 명창의 ‘심청가’는 박유전(강산제)-정재근(종증조부)-정권진-정응민-정회석 명창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로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음반은 4장 21트랙으로 3시간 52분 담겨져 있다. 해설서에는 명창의 설명과 프로필, 가사가 채록되어 있다. 북은 조용복 고수가 맡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판소리 완창음반이다. 저물어가는 CD시대, 이 음반이 마지막 완창음반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일청을 권해본다. 1916 하와이 호놀룰루 <애국창가>-인천콘서트챔버- 1902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향한 발걸음이 한국 이민역사의 시작이다. 초기 하와이 이민자는 인천 출신이 상당수였고 대부분이 감리교 신자였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국민성은 타국인 하와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16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는 ‘애국창가’ 악보집이 탄생하였다. 여기에는 제목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노래집에는 타향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 조국의 독립 염원을 담고 순국열사를 추도하기 위해 부른 노래,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부른 노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악보집에 근거하여 출반된 음반이다. ‘국민군가’ ‘애국가’, ‘국문가’ 등 모두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인천콘서트챔버, 서양악기 연주자, 성악가 등 많은 분들이 참여하였고 특히 이민으로 건너 간 감리교 신자들을 배출한 내리교회 성가대가 참여한 의미있는 음반이다. 1883년 인천은 타국에 처음 항구를 열었습니다.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음악도 같이 들어왔다. 그 때부터 유입되어 한국의 정서와 만난 음악을 추적하고 새로운 시각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음반을 제작한 인천콘서트챔버의 의도이다.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음반은 인천콘서트챔버의 3번째 음반으로 LP음반으로도 출반된 비매품이다. 해설서는 아주 자세하며 음악은 모두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고영열 & 존노 <Cantar> 소리꾼 고영열, 테너 존노이 만난 음반이다. 판소리계의 라이징스타'라 불리는 고영열 소리꾼은 퓨전 국악,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답게 혼자서 창자와 고수 역할을 같이 하는 피아노 병창이 특기이다. 거문고에도 깊은 조예가 있으며 트럼펫도 다룰 줄 안다.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는 테너 존노는 세계적인 오페라전문 잡지에서 "감미로운 테너”, "천부적인 테너”로 극찬을 받았다. 존노는 존스홉킨스 대학교 피바디음악대학 성악과를 수석 졸업하였으며 예일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는 한편 예일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음반에는 ‘INTRO’, ’TU ERES LA MUSICA QUE TENGO QUE CANTAR’ 등 모두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서양노래 위주로 그리스의 유명한 곡 ‘8시에 기차는 떠나고’ 도 들어 있다. 19 * 19 센티 크기의 큰 음반은 화보이다. 포토카드, 포스터카드도 들어 있다. 제작비에 비해 음반은 착한 가격으로 출반되었다. 두 사람의 팬이라면 꼭 소장할 것 같다. 청우 정창관 헌정음반 <그리운 고향, 새로운 아리랑> 이 음반은 (사)경기음악연구회(이사장 전병훈)가 필자에게 헌정한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필자와 관련된 ‘정창관아리랑’(2버전), ‘창녕아리랑’(3버전)과 ‘창녕양파타령’(4버전) 등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 수많은 아리랑이 있다. 이제 개인도 아리랑을 가지는 시대를 열기 위해 필자가 만든 아리랑이다. 곡은 필자가 발굴한 1896년 에디슨 원통음반에 녹음한 ‘유학생아리랑’을 전병훈 소리꾼이 편곡하고 필자가 편사하여 담은 ‘정창관아리랑’이다. 남창, 여창, 2가지 버전으로 담았다. ‘창녕아리랑’, 2016년 필자가 고향을 위해 작곡 의뢰하여 만든 아리랑으로 고향에 헌정한 아리랑이다. 1930년 조선민요연구라는 논문에 ‘창녕아리랑’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부르는 이가 없어 창작한(작곡 함현상) 아리랑이다. 가사는 고향의 풍광을 담았다. 여장, 청소년남창, 청소년여창, 3가지 버전으로 담았다. 경남 창녕은 양파의 시산지로 어린 시절 기억엔 고향에서 양파가 엄청 많이 생산되었다.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양파가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고향의 양파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필자가 작곡(함현상)을 의뢰하여 창작한 ‘창녕양파타령’이다. 가사는 양파의 시산지인 대지면에 거주하고 성기각 시인이 맡았다. 남창, 여창-표준어, 여창-창녕사투리, 청소년-표준어, 4가지 버전으로 담았다. 필자에게 헌정된 디지털음반으로 이 음원들은 음원사이트에 쉽게 구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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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100년, "백년 동안의 증언"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백년 동안의 증언'(책읽는고양이)이 출간됐다. 2023년 9월 1일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다.'백년 동안의 증언'은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일본의 혐오사회와 국가폭력에 맞서온 한·일 작가와 일반 시민들의 기록이다. 이 책은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지낸 김응교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간토대지진 관련 장소를 답사하고 여러 증인을 만나며 문헌을 연구 정리한 책으로, 반일(反日)을 넘어 집단폭력에 맞서는 두 나라 시민의 연대를 제안한다.일본 정부는 지난 백년 동안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을 끊임없이 삭제하려 했지만,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의도적인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한다. 이것만이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이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백년을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사건’에서는 지진이 어떻게 인재로 전개되는지를 정리하여 보여준다. 2장 ‘15엔 50전’은 쓰보이 시게지의 장시 '15엔 50전'을 국내 초역으로 수록했다. 3장 ‘증언’에서는 이기영, 김동환, 구로사와 아키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드라마 ‘파친코’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간토대진재를 다룬 작가와 감독의 증언을 전한다. 4장 ‘진실’에서는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일본의 개인과 모임을 소개한다. 5장 ‘치유’에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삭제와 왜곡으로 시달리는 가해자 모두의 치유를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관동대지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속에 결국 중요한 건 '치유'다. 일본 정부는 지난 백년 동안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을 끊임없이 삭제하려 했지만 저자는 "의도적인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한다. 그는 이것만이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이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백년을 위한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김 교수가 2005년 학술지를 통해 번역 발표했던 이 시는 100년 전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불이 꺼지지 않는 중에 / 벌써 유언비어가 시중에 문란하게 떠다녔다 / 요코하마(橫浜) 방면에서 센징(鮮人·조선인에 대한 차별어)이 떼를 지어 밀려오고 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소문이 퍼져갔고, 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은 1923년 12월 5일 자 신문에서 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로 인한 피해자가 6천661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 백년의 갈등, 그 해법은 무엇인가2008년 호주 노동당 총리 케빈 러드는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들을 모시고 ‘도둑맞은 세대’에 사과했다. 호주는 매년 5월 26일을 ‘국립 사과의 날’로 지키며 혐오 문제를 극복하려 애쓴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백년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흑인 차별은 1994년 넬슨 만델라에 의해 멈추었다. 이들은 진실을 밝히고 보복 대신 사면하고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갔다.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이라고 해봐!' 15와 50이 앞뒤로 있는 간단한 문구. 누군가는 말장난 아니냐고 하겠지만, 100년 전 일본에서는 생사를 가를 정도로 무서운 말이었다. 자신 있게 '쥬우고엔 고쥬센'라고 발음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츄우코엔 코츄센'이라고 발음하거나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무자비한 창칼이 날아들었다. 저자는 발음 하나를 듣고 사람의 목숨을 따진다는 것은 광기라고 폭로한다.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1898∼1975)는 '그저 그것 때문에' 1923년 9월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서 조선인들이 무참히 살해됐다고 증언한다. 일본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본에도 아시아에 저지른 백년의 과거를 괴로워하는 일본 시민, 작가, 학생 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 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 라고 했다. 소수이긴 해도 일본 내에도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지식인들이 있기에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우리는 집단적 광기라는 것이 망상(妄想)에 불과하다는 뚜렷한 기억(記憶)을 새겨야 한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군인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려는 일본 시민 단체와 연대하고, 한국과 일본의 양심 세력·연구자·작가들이 ‘우리’가 될 때, 장시 '15엔 50전'의 숙제는 그 만남의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가 변할 수 있을까 묻는다. 그 가능성이 0%라고 해도 일본 정치인들의 변화를 기대하고 모든 매체를 통해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을 격려하고, 잘못된 판단을 세뇌시키려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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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자 한국국악협회 인천시지회장9월 23일 한국국악협회 인천광역시 지회가 주관하는 '제23회인천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가 개최된다. 한국국악협회 인천광역시 지회는 우리 고유의 국악 예술을 보존·육성하고 향상·발전시키며 국악인 상호간에 친목을 통해 국악 예술인의 사명과 임무를 완수하여 선조가 물려준 전통 예술을 보급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 연합회 인천광역시 연합회 산하의 인천광역시 국악 예술인들의 단체로써 매년 '인천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올해로 23년간 개최해오고 있다. 1962년 2월에 한국 국악 협회 경기도 지부로 처음 조직되고, 1963년 2월 27일 율목 공원에 대지를 얻어 회관을 건설하고 경아대(景雅臺)라 명명하였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가 됨에 따라 한국 국악 협회 인천직할시 지부가 되었으며, 1995년 인천직할시가 광역시가 됨에 따라 한국 국악 협회 인천광역시 지회가 되었다. 1962년 2월 11일 한국 국악 협회 경기도 지부가 조직된 후 주요 행사로는 전국 시조 경창대회, 전국 경창 대회 경기도 예선 대회, 시조 대 강습회, 인천 시민의 날 기념 공연 등을 들 수 있다. 1981년 한국 국악 협회 인천직할시 지부로 개칭된 이후 주요 행사로는 1982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인천 시민의 날 행사로 ‘국악제’와 ‘국악의 큰 잔치’를 열어 인천 시민을 위한 잔치 행사를 개최하였다. 또 1983년 열린 ‘경서도 민요 경창 대회’는 인천 시민의 큰 호응을 얻은 행사이다. 1995년 한국 국악 협회 인천광역시 지회가 되고 난 후 주요 행사로는 국악의 향연, 도서 벽지 순회공연, 전국 경서도 민요 경창 대회, 제물포 예술제, 풍물 및 사물놀이 경연 대회, 시조 경창 대회, 중부 지방 민요 발표 공연 등이 있다. 한국 국악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국악제, 국악 작곡 축제, 국악 대경연 등에 참가하고 있다. 분과로는 창악 분과, 기악 분과, 경기 민요 분과, 서도 소리 분과, 무용 분과, 국극 분과, 농악 분과, 시조 분과, 문예 분과, 민속 연희 분과, 가야금 병창 분과, 고수 분과가 있다. 2018년 한국국악협회 인천광역시 지회 지회장은 이순희(임기 4년: 2017년 3월~2021년 3월)이며 부지회장은 유은자, 손삼화, 정원호, 이어숙이 맡았다. 당시 32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사)한국국악협회 인천지회 제25대 지회장은 유은자 명창이 맡아오고 있다. 유 지회장은 경기 민요를 전공한 국악인으로 지역 내에서 국악 교육과 전수 활동을 이어왔다. 유은자(1957년생)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제 제57호 경기민요 준예능보유자 김금숙 선생님로부터 ‘경기민요 및 십이잡가’ 사사하고,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이수자이다. 2003년 경서도 민요 전국대회 ‘명창부’ 대상을 수상하면서 인천에서 국악 중 성악 부분에서 구심점 역활을 해오고 있다. 2005년부터 국악협회 인천 지회 부지회장을 시작으로 2018년 (사)한국국악협회 인천지회 제25대 지회장 취임하여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다. 유 회장은 지난 2021년 3월 25일 인천국악회관에서 열린 제58차 지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4년간 250여명 회원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유 회장은 인천시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악뱔전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 2001년 인천 용일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제물포고등학교 등에서 민요를 가르쳐 오고 있다. 유 회장은 "한국국악협회 인천광역시 지회는 인천의 국악 발전에 앞장서고 있으며 국악이 인천 시민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국악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전통 놀이, 국악 놀이, 사물놀이 등의 놀이를 통해서 국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 9월 23일 23돐을 맡는 인천국악대제전에 전국에서 많은 국악 애호가와 명창들이 작년에 이어 많은 참가를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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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역춤의 개념과 형성 배경 (종합)지역춤이란 특정 지역의 생태문화적 배경 속에서 지역민들에 의해 공통적 특징을 형성하면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춤을 말한다. 지역춤은 지역의 기후풍토와 사회환경에 따라 민족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역마다 춤사위 형태나 내용이 다르게 파생된다. 예를 들면 추운 지역과 더운 지역의 춤이 다르고, 산악지대와 평야지대의 춤이 다르고, 유목민들의 춤과 농경민들의 춤이 다르다. 또 세시풍속과 시대, 향유자의 사회신분과 종교에 따라서도 춤이 달라지고, 반주음악이나 의상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된다. 전통춤의 문화권은 대체로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강원권, 수도권, 이북권 등으로 나누어진다. 자연풍토적 배경과 지역춤의 상관성 추운 지역은 수직춤과 도약(跳躍)춤, 더운 지역은 수평춤과 답지(踏地)춤 추운 지역은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도약하는 수직춤과 강렬한 춤을 춘다. 수직춤이란 발과 다리를 많이 사용하여 무릎 굴신이 많고 온몸을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도약(跳躍)춤이다. 북방민족인 몽골의 기마민족춤, 러시아 코사크 댄스(Cossack Dance)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북부지역의 춤은 일반적으로 남부지역춤에 비해 강렬하고 도약이 많은 특징을 보이는데 해서지방 탈춤과 무당춤, 북한민속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더운 지역에서는 뛰는 춤을 추면 금방 더위와 땀으로 범벅이 되기 때문에 온몸으로 뛰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 부드럽게 손과 발만 추는 말초부위춤을 추거나 엉덩이만을 좌우로 흔드는 수평춤을 춘다. 수평춤은 몸통 사용을 억제하고 손을 주로 사용하거나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흔들거나 걸어다니며 추는 평면적인 답지(踏地)춤이다. 동남아시아 태국과 인도 등 남방민족의 말초부위만 움직이는 눈춤과 손가락춤, 폴리네시아의 허리춤과 하와이 훌라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의 남부지역의 춤은 북부에 비해 부드럽고 도약이 적고 땅을 밟는 답지춤이 많은 특징을 보여주는데 산대탈춤, 남부무당춤, 강강술래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아프리카 열대지역도 더운 곳인데 마사이족이 도약춤(Jumping dance)을 왜 출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들은 대평원의 수렵생활로 맹수의 위협에 대한 사전방지와 사냥감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높이 뛰어 먼 곳을 확인해야 하는 삶의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평원의 춤은 수렵이라는 생업의 방식으로 인해 춤의 생성요인이 다른 배경에 놓여있다. 산악지대는 천상지향춤, 평야지대는 대지지향춤 산악지대의 경우는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숲과 나무 등 주변의 공간적 장애로 움직임이 제한적이어서 보이는 태양과 하늘을 향해 춤을 추는 천상지향춤, 상향춤이 주로 나타난다. 또한 좁은 공간 때문에 팔과 손도 옆으로 펼치기보다는 위를 향한 발산적인 춤을 추며 고도가 높아 추운 지역의 춤들과 유사성을 보인다. 티베트의 장삼자락춤, 멕시코 아즈텍의 태양신춤, 한국의 백두대간을 따라 존재하는 함경도 돈돌라리춤과 애원성춤 등에서 그 특징이 나타난다. 평야지대는 드넓은 지역이라 춤 종류도 다양하고 땅에서 일용한 양식이 창출되기에 대지에 고마움을 가지고 몸을 낮춰 추는 대지지향춤, 하향춤, 흥겨운 춤, 손과 팔을 옆으로 마음껏 펼치며 부드러운 예능성이 높은 춤이 발달한다. 평야지대는 대체로 따뜻한 지역이 많아 더운 지역의 춤과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평야지대는 대부분의 농경지로 농업을 영위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농경춤이 발달하고 있다. 농경민족은 손춤, 유목민족은 발춤 흔히 유럽춤은 발레처럼 발춤을 주로 추는데 한국춤이나 아시아춤은 발보다 손춤을 주로 추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화현상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농경생활이 주업인 한국과 아시아인들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위해 파종부터 김매기와 추수까지 모두 손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춤의 중요한 기원 중 하나가 바로 먹거리를 찾아야하는 생업을 모방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면 원시시대의 수렵춤과 채취춤으로부터 유목춤과 농경춤이 이어져 왔는데, 이것은 풍요를 기원함과 동시에 생업의 몸짓을 표현으로 옮긴 모방춤들이다. 농경활동은 주로 허리를 굽히거나 몸을 낮춰 손으로 하는 농사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발춤보다는 농경을 모방한 손춤이 더 발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아시아 농경춤들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목은 많은 가축을 이끌고 초원을 찾아 걷거나 뛰어다니는 이동생활이 근간이기에 유럽 유목민들의 춤은 손춤보다 월등히 발춤이 발달하고 있다. 서양 발레나 아일랜드의 탭댄스(Tap Dance)가 발춤 중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생업적 요인으로 볼 때 농업이 주업인 아시아춤은 손춤, 유목이 주업인 유럽춤은 발춤이 발달하게 된 이유이다. 사회환경적 배경으로 형성된 지역춤 앞서 밝힌 자연풍토적 배경들인 온난의 기후적 요인, 산간과 평야 등 지리적 요인, 농업과 유목 등 생업적 요인이 지역춤 형성의 초석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는 사회환경적 배경인 세시풍속적 요인, 역사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 지역춤의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일상생활에서 계절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민속을 말한다. 지역에서 행해지는 축제, 카니발, 명절, 추수감사제 등에서 연행하는 지역춤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월 대보름 농악춤과 무동춤, 단오절의 탈춤, 백중절의 허튼춤, 추석절의 강강술래 등 다양한 민속춤들이 지역마다 전승된다. 역사적 요인으로 고대춤, 중세춤, 근대춤 등 시대변천에 따라 다양한 춤들이 생성되고 소멸되고 전승되었다. 동시대라 할지라도 한국의 역사에서 보면 상고시대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 동맹(東盟) 등이 있었고, 삼국시대에도 고구려의 호선무(胡旋舞), 백제의 기악(伎樂), 신라의 사자춤, 처용무 등 각기 다른 지역춤들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요인이 되는 신분, 행정구역, 교류관계로 인해 지역춤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봉건시대의 신분과 관련한 춤으로는 궁정(궁중)춤과 민속춤, 귀족(양반)춤과 서민(농민)춤, 기방춤과 재인춤 등이 있다. 여기서 궁중춤은 지배자(왕, 황제)가 통치할 때 쓰이는 춤으로 단일하기 때문에 지역 유파(流派)가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행정구역은 지역춤의 권역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지역춤의 유파가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예로부터 ‘조선팔도’라는 말은 한국을 8도로 구분한 것인데 이것은 곧 8도의 지역춤이 제각기 형성되어 있다는 뜻과도 같다. 교류관계란 전파문화인지 창조문화인지를 파악하는 관계를 뜻한다. 우수한 문화는 주변지역으로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반대로 특정지역에서 창조된 문화는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다는 특성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성향의 비중에 따라 전파지역인지 독창지역인지가 나타나는 원리를 가진다. 즉 전파한 유사성보다 창조한 독창성이 많을 때 타 지역과 차별이 나타나고 지역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농악춤은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악기연주자는 연주만하고 연희자는 춤만 추는 것이 기본원리인데, 한국의 농악춤은 타악연주자 모두가 연주하면서 집단춤을 추고 게다가 상모돌리기까지 하는 연행형태를 띠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것이다. 민족문화적 배경으로 형성된 지역춤 지역춤을 형성하는 민족문화적 배경은 종교의식과 반주음악, 춤의상 등의 요인을 들 수 있다.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민족의 사상 감정과 윤리 도덕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에 자연히 춤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종교의식은 춤의 요소가 많은 무교(巫敎),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수니파) 등도 있지만, 춤의식을 거부하는 기독교일지라도 지역춤의 성격이나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무속의식은 소리와 춤과 공수내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의식도 영산재, 수륙제 등에서 범패와 작법춤으로 진행하며, 힌두교도 가락과 춤으로 푸자(puja)의식을 거행하며, 이슬람교 수니파의 의식춤으로는 터키 세마(Sema)춤과 이집트 탄누라(Tanoura) 등 선회(旋回)춤이 유명하다. 춤은 무반주로도 추지만 대부분 음악반주에 맞춰 춘다. 따라서 악기, 선율, 리듬, 노래 등의 음악적 상관관계가 클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다양한 민족악기와 민요와 장단 등에 맞추어 민족정서가 담긴 춤이 형성되고 전승되므로 음악반주의 영향력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역춤은 지역민들의 의식주와 관련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지역민들의 종족의상을 입고 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복의 맵시와 소품들에 의해 춤의 성향과 춤사위가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밖에도 통과의례의 요인으로 출산의례춤, 성년의례춤, 혼례춤, 장례춤이 있으나 문명화됨에 따라 의례만 남고 춤은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지역춤을 형성하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춤은 자연풍토적 배경으로 ‘뿌리’를 내리면 사회환경적 배경으로 ‘줄기’를 이루고 민족문화적 배경으로 ‘열매’를 맺게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병옥 전통예술 연구가, 용인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무용평론가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 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 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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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의 지역춤, 광주·전남지역춤지역춤이란 특정지역의 생태문화적 배경 속에서 지역민들에 의해 공통적 특징을 형성하면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춤을 말한다, 한국의 전통춤은 지역마다 색다른 지역춤들이 전승되고 있다. 한국의 지역춤을 형성하게 된 생태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전국을 영남과 호남, 강원과 충청, 수도권과 북한 지역춤 등으로 나누어 대표적인 춤 종목과 특징을 연재한다. 기후와 지리환경에 따라 발달한 농경민속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국토 구조로 인해 위도에 따라 기후환경에 차이가 있다. 대체로 남부지역은 북부지역에 비해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로, 삶이 여유롭고 느긋하여 속도가 빠른 춤이나 도약하는 춤보다는 느리지만 멋스러운 민간춤이 발달하였다. 지리적으로 평야지역은 풍농으로 인한 풍요롭고 흥겨운 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교통이 발달하여 문화의 교류가 빈번하고 전파력이 좋아 춤의 종류도 다양하다. 평야지대로 갈수록 폭넓게 움직이는 ‘수평춤’이 많고, 산악지대는 ‘수직춤’이 많다. 수직춤이 발로 뛰어오르는 도약과 무릎 굴신이 특징이라면 수평춤은 발의 옮김과 손을 넓게 펴들고 추는 춤사위가 특징이다. 광주·전남지역은 따뜻한 남쪽지방에 위치하고, 산보다 평야가 많아 풍요로운 농경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농악과 농요를 비롯한 농경민속춤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농경지를 향한 ‘앉은춤’, ‘엎드린춤’, ‘굴신춤’ 등 대지지향적인 ‘하향춤’이 많으며, 주로 손으로 이루어지는 농경생활은 농경모의적인 손춤, 팔춤, 곡선춤이 발달했다. 북쪽지역의 도약춤과 대비되는 남쪽지역의 춤 특징인 ‘답지(踏地)춤’을 비롯하여 ‘평걸음’, ‘지숫는 춤’, ‘양팔 들사위’ 등 수평춤의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도약을 억제하는 평면적인 춤과 빠르지 않으면서 흥이 넘치는 손춤, 내면적인 멋을 가진 승무와 살풀이춤, 입춤 같은 예인들의 춤이 주로 전승되고 있다. 세시풍속에 따른 추석문화권춤 세시풍속을 지역문화권으로 나누는 민속학계의 통설은 북부지방의 단오문화권, 중부지방의 단오·추석문화가 복합된 백중문화권, 따뜻한 서남지역 평야지대의 추석문화권으로 구별한다. 민속학자 김택규는 단오권이 ‘도당굿-입체적·동적’, 복합권이 ‘별신굿-평면적·동적’, 추석권이 ‘당산굿-평면적·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춤문화권 역시 단오권은 수직적·입체적·동적인 춤, 추석문화권은 수평·평면·정적인 춤, 복합권은 그 중간으로 수직·수평과 입체적·평면적인 정중동의 춤이다. 그중 호남지방은 추석문화권으로 넓은 평야가 있는 곡창지대에서 풍년을 가져다 준 천신과 지신에 감사드리며 그 기쁨의 축제를 벌이는 지역이다. 이들은 천신보다 지모신을 더 숭배하는 대지지향적 하향춤과 땅을 자근자근 밟는 강강술래의 답지춤, 수평적인 양팔사위와 여밀사위 등의 하향춤을 많이 춘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광주·전남지역춤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느린춤’, ‘곡선춤’, 아래로 여미는 ‘하향춤’과 손목놀림이 많은 ‘손춤’이 발달하였고, 발걸음춤으로는 부드럽게 대지를 밟아주는 ‘답지(踏地)춤’이 발달하였다. <정범태(2006), 한국백년1, 서울: 눈빛출판사, pp.12~13.> 광주·전남지역 농악춤 한국의 농악권은 호남 우도농악, 호남 좌도농악, 경기 및 충청농악, 영동농악, 영남농악 등 다섯 지역으로 나뉜다. 호남지방은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우도농악과 좌도농악, 두 가지 유파로 분류된다. 호남 우도농악은 익산에서 목포로 이어지는 평야지대로 쇠와 장구춤을 중시하고 가면잡색놀이가 특징이며, 당산제와 마당밟기를 중심으로 부포상모춤, 고깔소고춤이 발달하였다. 장구가락이 아주 발달하였으며 윗놀이보다 밑놀이가 발달하였고 악기별 개인놀이가 발달하였다. 이에 비해 호남 좌도농악은 전주, 남원, 여수로 이어지는 산악지대로 쇠와 장구놀이를 중시하고 잡색탈춤과 동물 등 배역놀이가 발달하였으며, 고깔보다 전립을 쓰는 채상소고춤이 발달하였다. 우도농악보다 가락이 빠르고 윗놀이가 발달하였으며 집단적인 진풀이가 특징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 걸립패들의 농악은 곡창지대에서 판굿에 대한 후한 쌀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능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탈춤 종목이 독립적으로 발달되지 못하고 잡색(雜色)들의 가면극놀이가 농악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소리춤의 대표 <강강술래> 소리춤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르를 말하며 대표적으로 강강술래가 있다. 남성들이 추는 소리춤과 여성들이 추는 소리춤으로 나눌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소리춤이 많이 발달했다. 기본적으로 원무 형식의 집단춤이지만 놀이적인 것이 혼합된 대형변화 형식도 많다.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강강술래에는 고사리 꺾기, 청어엮기와 풀기, 덕석몰이, 바늘귀 꿰기, 남생아 놀아라, 쟁기질놀이, 문지기놀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강강술래는 일반적으로 여성소리춤으로 분류하고 있다. 남녀유별(男女有別) 사상이 깊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춤에서도 이런 현상이 깊게 투영되었다. 임진왜란 시기 일본해군의 야간 침투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였으며, 그 시간동안 군사들은 잠을 자고 대낮의 전투를 대비했다는 이야기가 강강술래의 기원설로도 전해지고 있다. 물론 현재도 전남 여러 지역의 강강술래가 여성소리춤으로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신안 비금도 등지에서는 남녀가 함께하는 강강술래가 전승되고 있기도 하여 지역에 따라 남녀소리춤으로도 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매방의 승무와 살풀이춤 이매방(1927~2015)은 전남 목포출신으로 어린 시절 집 옆의 목포권번에서 함국향이라는 권번장의 가르침으로 기방춤 기본을 익혔고, 이대조(검무, 승무), 박영구(승무, 법고), 이창조(검무)등으로부터 전통춤을 다졌고, 6·25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해서도 춤을 계속하였다가 상경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 제97호 살풀이춤(1990) 두 종목의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평소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지”라는 말씀을 하였으며, 여성보다 더 고운 춤을 춘다는 평을 받았다. ‘하늘이 내린 춤꾼’, ‘국무(國舞)’등의 칭호를 붙인 『이매방화보집』(이병옥·김영란 집필, 2011)을 봉정할 만큼 이수자들만도 수백 명에 이르며 명무제자(너무 많아 명단 생략)들도 수두룩한 범한국적인 최정상의 춤꾼이었다. 한진옥류 검무와 재인춤 광주·전남지역 명무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타지방에서 춤사범이나 춤꾼으로 생애를 보낸 이들(강태홍, 박지홍, 김계화, 이매방 등)이 많은데, 이에 비해 끝까지 고향을 지킨 명무에는 한진옥(1911~1991)을 꼽을 수 있다. 한진옥은 ‘못 추는 춤이 없는 춤의 팔방미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그가 선대 명무였던 이장선(굿거리·바라무·살풀이·부채춤·승무 등), 신갑도(팔도 검무), 이창조(검무, 창), 장판개(창) 등으로부터 다양한 춤과 소리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은 많았었는데, 대부분이 떠나자 "지방에 살다 보니 알아주던 사람도 떠나가고 남는 건 회한뿐”이라며 "백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끼니 간 곳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었다. 자칫하면 맥조차 끊길 뻔했던 스승의 ‘팔방춤’의 맥을 제자 김다복, 임순자가 잇고 있을 때 지역의 무형문화재 지정 필요성을 공연 해설 때마다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떠나고 김자연 등이 겨우 맥을 있고 있어 안타깝다. 속히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의 맥을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과 허튼춤 ‘1인 창무극’의 선구자로 알려진 공옥진(1931~2012)은 곱사춤, 병신춤, 원숭이춤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이 시대의 광대춤꾼이었다. 전남 영광 출신으로 남도 판소리의 대가였던 아버지 공대일에게 창을 배웠다. 1945년께 조선창극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고 고창 명창대회에서 장원에 입상했다. 1973년 남도문화제에서 '1인 창무극'을 창안하였고 1978년에는 익살맞은 병신춤과 판소리 창이 곁들어진 '1인 창무극'을 선보였다.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정병호(중앙대교수)에 의해 발굴된 공옥진의 특이한 춤들은 병신춤 외에도 곱사춤, 원숭이춤 등 동물을 모방한 춤으로 천연덕스러움과 청승맞음이 담겨있었으며, 『병신춤을 춥시다』(1982, 문순태 저)로 공옥진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세상이 알려지기도 했었다. 당시 ‘1인 창무극’ 공연을 봤던 필자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눈물범벅으로 울었다가 배꼽 빠질 지경으로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장애인 단체의 거센 반발로 병신춤은 사리지고 동물 모방춤만 추게 되었으며, 그 후 뇌졸중으로 오래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전남 무형문화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무대에 서는 투혼을 보여주었고, 필자가 해설을 했던 제 71회 <한국의 명인명무전>(국립극장)에서도 살풀이춤으로 생애 마지막 무대를 선보여 커다란 감동을 주고 떠났다. 박병천의 진도북춤과 씻김굿 진도북춤의 명인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 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였던 박병천 명인(1932~2007)은 무용계에서는 ‘진도씻김굿’보다는 ‘진도북춤’ 명인으로 추앙받았으며, 모두가 ‘박병천의 진도북춤’이라고 할 정도로 대표명칭이 되었다. 박병천 명인의 춤바디도 우리가 흔히 아는 곱디 고운 기방계춤이나 고고하고 담백한 재인계춤 바디가 아닌 독특하고 투박한 민간계 춤바디를 지녔다. 박병천 명인이 보유한 예능 중 최고의 걸작은 ‘구음시나위와 징(鉦)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전통춤꾼들은 앞을 다투어 살풀이춤이나 입춤 등의 반주곡으로도 많이 쓴다. 그런데 필자가 본 많은 공연무대에서는 구음소리만 들리고 춤이 묻혀 버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박병천의 구음소리가 워낙 심금을 울리니까 관객들은 춤보다 소리 감흥에 매료되어 춤이 눌리는 분위기가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춤의 기량과 끼가 박병천 구음소리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춤꾼이 아니면 소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니 이 시대의 명인 중의 거장임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광주·전남지역은 지리환경의 영향으로 좌·우사위(수평적, 평면적)가 많고 ‘땅기운이 온몸으로 지피는 춤(대지지향, 하향춤)과 땅을 밟는 춤(답지춤)’이 특징이다. 또한 넓은 평야와 농경지가 많아 농악(우도, 좌도농악)과 소리춤(강강술래)이 발달하였다. 추석 때가 되면 햇곡식과 햇과일의 추수를 천신과 지신에 감사드리는 추석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은 육자배기토리의 노래와 시나위 선율이 발달한 관계로 춤도 흩어지다 모아진 산조(散調) 음악의 느린 장단에서 점차 빠른 장단을 넘어가며 자지러질 듯 혹은 숨죽일 듯 손사위를 펼치는 ‘산조춤’과 구구절절 맺힌 한과 삶의 애환을 담았다가 차원 높은 신명으로 승화하는 ‘살풀이춤’, 그리고 농경사회의 영향을 받아 민초들의 고단함이 녹아있으면서도 풍요와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허튼춤’이 발달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에 판소리와 노동요 등이 지정되면서 광주·전남지역의 무형문화재에 판소리와 고법 12종목, 농악 6종목, 민요와 노동요가 15종이나 지정되어 가히 예향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춤 분야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호남출신 이매방 명무를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 보유자로 지정하였을 뿐이며, 광주·전남지역에서는 한 종목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아 지역춤들이 소멸될 위기에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병옥은 전통예술 연구가, 용인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 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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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의 지역춤, 부산·경남지역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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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98)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고인돌은 '굄돌'을 놓아 만든 무덤이라는 뜻이다. 굄돌 위에 대형의 판석을 덮었으니 사실은 '덮은돌' 혹은 '누운돌'이라는 이름이 정확할지 모른다. 세운 돌을 '선돌', 한자말로 '입석(立石)'이라 한다. 세운 돌과 대칭관계를 이룬다고 봤을 때 서있는 돌과 대칭되는 개념은 '누운돌' 혹은 '덮은돌'이다.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으로 호명한다. 석붕의 붕(棚)이 시렁이나 선반 같은 것을 말하므로 '돌선반'이나 '윗덮개' 즉 '덮은 돌'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Dolmen'의 'men'이 돌이라는 뜻이고 'dol'이 탁석(卓石)이라는 뜻이니 테이블 모양의 돌 즉 이것도 위의 덮은 돌에 의미를 둔 호명 방식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위에 덮은 판석보다 밑에 고인 굄돌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인돌'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한자말 지석묘(支石墓)의 지(支)가 지탱하다 버티다 괴다 등의 뜻이 있으므로 이 또한 굄돌의 의미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의 분포가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거석들과는 다르게 왜 우리는 덮개돌보다 굄돌에 의미를 더 두었을까. 덮은돌과 고인돌, 한반도를 왜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니 고인돌을 한반도 특유의 묘제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풀이해두었다. 그런데 고인돌의 분포지역은 북유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유럽의 영국으로, 프랑스, 스위스와 이베리아반도를 거쳐 지중해의 북쪽 연안지방,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와 중국의 복건성, 절강성, 산동반도, 요동반도, 길림성 남부를 거쳐 한반도 전역, 일본의 규슈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해있다. 거의 세계적이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해있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았겠는가.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하천유역의 대지와 낮은 구릉에 많이 축조되었다. 넓은 평야지대보다는 산과 구릉이 가까운 약간 높은 평지와 해안지대 등지에 많다. 시기적으로 보면 청동기시대에 성행하여 초기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 무덤양식이다. 대개 유력자의 무덤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문제제기 하나, 고인돌을 세계적인 거석문화의 하나로 보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으나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 또는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 등을 한 그룹에 넣어 해석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광의의 맥락에서는 예컨대 누운돌이나 덮은돌의 개념이라면 돌멘(Dolmen)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협의의 맥락 즉 '굄돌'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격이 다르지 않을까? 무덤의 구조로 봐도 한반도의 고인돌이 가장 확실하고 수량도 가장 많다고 한다. 고인돌은 함경북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특히 고창, 화순 등 남부지역에 유달리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많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지만 아직도 15,000개에서 20,000여개가 남아있어 심지어 한반도를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중 대부분이 남도에 있으니 바꾸어 말하면 남도지역을 사실상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러도 무방할까? 고인돌은 굄돌을 통해 만든 인조동굴이다 문제는 왜 그냥 덮지(덮은돌) 않고 돌을 고였(굄돌)을까 하는 점이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땅에 있는 구조물을 이용하거나 평지 혹은 땅을 파고 돌을 덮으면 덮은돌 혹은 누운돌이 된다. 굄돌을 사용한 이유는 돌을 고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떤 환경 즉 판석과 굄돌간의 공간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굄돌을 괴면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은 지상으로부터 떠 있기도 하고 혹은 지표 아래 조성되기도 한다.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의 할아버지당을 사례 삼아본다. 쭈뼛쭈뼛 세운 거석들 위로 마치 고인돌처럼 판석을 덮은 형국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은 청동기시대의 잔존물을 후대에 마을당(堂)으로 삼은 것일까? 이런 형식은 서남해안 특히 섬지역에서 산견되는 '고려장' 혹은 '고린장'이라고 부르는 묘제에서도 발견된다. 하나같이 돌을 좌우로 쌓아 올리고 판석이나 흙을 덮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지난 칼럼에서 옹장(甕葬)과 석장(石葬)의 아우라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게 보면 동굴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의 지면을 통해 자연토굴에서 인위적 토굴로 이어지는 맥락을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동굴의 이미저리는 고인돌에서 옹관으로 특히 아이들의 주검을 처리하는 독장으로 이어져왔다고 본다는 점도 밝혀두었다. 이천년을 지나고서도 유독 아이들의 주검을 독담 혹은 독장 형식으로 처리하는 이유를 상기해보면 한편의 답이 주어질 수 있다. 주체세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선대는 고인돌로 후대는 옹관으로 장묘제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초분과의 관련은 차차 설명해나간다. 어쨌든 '굄돌'을 강조하여 고인돌이라 호명한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돌을 괴서 만든 인조동굴, 여기서 말하는 동굴은 자궁 모티프이며 고대인들의 생산관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즉 고인돌은 무덤 양식이면서 생산을 하는 재생의 동굴이기도 하다. 고인돌에 그려진 북두칠성이나 윷판바위, 불교의 관음설화는 물론 수많은 여음굴 설화들도 관련된다. 고대인들은 고인돌에 어떤 신화들을 투사하였던 것일까. 단군신화, 웅녀가 탄생한 동굴은 어디에 있을까? 동굴 관련 설화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단군신화다. 이들 설화소는 남근바위와 대칭을 이루며 음양론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동굴 자체 즉 음기(陰氣) 만으로 출산 혹은 생산의 의미를 완성하기도 한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 아래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천부인 3개를 받아 3개의 큰 봉우리가 있는 태백산 정상에 내려왔으며 무리 3000을 거느리고 정상의 신단수 아래 '신시(神市)'를 열고 환웅천왕이 되었다. 3이라는 숫자를 주목하자. 단군신화 동굴의 삼칠일에 대해서는 대개 7일이 세 번 거듭된 날짜로 해석해왔다. 현재까지 전승되어온 세이레 습속에 착안한 해석이다. 예컨대 아이가 출생하면 7일째 되는 날은 초이레, 14일째 되는 날은 두이레, 21일이 되는 날을 세이레라 한다. 출입문에 숯과 한지 등을 끼워 넣은 왼새끼 즉 금줄을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이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 착안하면 이것이 세 번의 칠일임을 알 수 있다. 북두칠성을 상징 삼는 부족이 3이라는 숫자를 상징 삼는 세력과 연대했을까? 숫자 3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유익한 숫자로 이해되었던 점 불문가지다. 특히 동양권 예컨대 우실하에 의하면 몽골리안의 3이라는 숫자는 다시 그것을 3번 더하는 숫자 9를 최정점으로 여긴다. 불교의 장례기간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이 7을 다시 일곱 번 더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 제기, 그렇다면 웅녀가 태어난 동굴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난 칼럼에서 다룬 중국 지린성의 국동대혈이나 수많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천연동굴 곧 여음굴일까? 단군신화가 지극한 상징이고 비유라면 동굴 또한 지극한 상징과 비유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신약성경 요한복음 20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동굴)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그렇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한 곳도 동굴 무덤이었다. 출입문에 숯과 한지 등을 끼워 넣은 왼새끼 즉 금줄을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이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 착안하면 이것이 세 번의 칠일임을 알 수 있다. 북두칠성을 상징 삼는 부족이 3이라는 숫자를 상징 삼는 세력과 연대했을까? 숫자 3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유익한 숫자로 이해되었던 점 불문가지다. 특히 동양권 예컨대 우실하에 의하면 몽골리안의 3이라는 숫자는 다시 그것을 3번 더하는 숫자 9를 최정점으로 여긴다. 불교의 장례기간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이 7을 다시 일곱 번 더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 제기, 그렇다면 웅녀가 태어난 동굴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국 지린성의 국동대혈이나 수많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천연동굴 곧 여음굴일까? 단군신화가 지극한 상징이고 비유라면 동굴 또한 지극한 상징과 비유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신약성경 요한복음 20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동굴)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그렇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한 곳도 동굴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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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37)태기산 곰치 나물은 나지미 맛만 같으면 병자년 그 숭년에도 봄 살아가리. 노랑대가리 얼키 설키에 지붕박 상투 어린 낭군 언제나 키워서 내 낭군을 삼나. 어리어리랑 스리스리랑 어러리가 났네 얼었다가 녹아 지니는 봄철이로구나. 작품감상 아리랑의 노랫말은 민간에서 제 멋으로 만들어져 불렸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달랐고, 생활환경이나 지식 정도에 따라 용어의 수준도 갖가지였다. 더러는 이 말 저 말 뒤섞여 문맥이 얼크러지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한을 한꺼번에 터뜨리다 보니 그럴 만도 하였으리라. 이 노래도 노랫말이 어지럽다. 나지미는 친숙하다는 일본말인 듯하고, 노랑대가리 지붕박 상투도 귀에 설다. 흉년을 곰치 나물로나 넘겨야 하는 아낙의 절박함과 봉두난발의 철부지 어린 신랑에 대한 속절없는 젊은 아낙의 기대가 아리다. 얼었던 대지가 녹는 봄이 되면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 후렴구의 가락을 따라 민체로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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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고창청보리밭축제 15일 개막20여만평의 광활한 대지에 태양 아래 초록 물결이 펼쳐진다. 전북 고창군은 오는 15일부터 5월 7일까지 ‘제20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열린다고 10일 밝혔다. 전북 고창군은 올해를 ‘세계유산도시 고창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1000만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뛰고 있다.고창군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 프로그램 5개(고인돌, 갯벌, 농악, 판소리, 생물권보전지역)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유산인 고창농악과 판소리를 더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군은 농악 상설공연을 다음 달부터 성송면 농악전수관과 함께 고창읍 신재효판소리공원에서도 진행한다.심덕섭 고창군수는 11일 "올해는 자랑스러운 고창을 국내외에 알리고, 군민이 하나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세계유산도시에 오셔서 봄을 만끽하고 맛있는 음식도 드시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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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1/694쪽’의 아리랑(상)삼목 作 1984년 초, 삼목은 경기도의 한 사립중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86아시안 게임 개최가 발표되면서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담론 속에서 아리랑, 김치, 태권도, 호랑이 같은 민족 상징에 대한 의미화 논의가 문화계 전반에 화두가 되어 있을 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목도 열열하게 아리랑 자료 수집과 자라매김에 매진하고 있었다. 삼목이 새 학기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서 출석부를 위치시키고 돌아설 즈음, 교무주임이 전화 받으러는 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아 김씨, 나 장승백이 김이요. 오늘 서울에 오나요? 아리랑 자료가 나왔어요. 어, 비싸서 권하기는 좀 뭐 한데, 이게 만주국에서 나온 귀한 책이에요. 오늘을 넘기면 돌려주어야 해서 결정을 해야 하는 거요. 가격은~” 삼목은 어차피 토요일이라 서울 집으로 갈 계획이었기에 부리나케 가방을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대지극장 앞에서 내려 다시 노량진행 버스를 타고 진오서적(당시 고가의 문학서적 위주로 판매하던 고서점) 근처 다방에서 여차저차한 사정을 들어 월급 날 값기로 하고 양도를 받았다. 삼목으로서는 여러 번 망설이고, 많은 생각 끝에 한달 원급에 반을 더한 가격으로 샀다. 문헌 소재 ‘아리랑’은 거의 부속적으로 존재한다. 표제標題가 ‘아리랑’인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제가 다른 컨텐츠 속의 하나로 끼어있거나 일부로 언급될 경우가 대부분이다. 끼어있는 경우는 잡지 속에 수필이나 시나 단편 소설 한편이 들어있는 경우이고, 일부로 언급 되는 경우는 어떤 이의 수필 속에, 회고기 속에 에피소드로, 또 아니면 ’아리랑을 불렀다‘ 정도로 언급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것을 입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전체 값을 치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억울한 여건을 감수하고 값을 치르는 것이다. 삼목이 구입한 책 중에 거의가 이런 경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하게 값을 치루고 산 것이 바로 ‘장승백이 김선생’(고서 중개인 중에는 매우 신사다운 분으로 일본어 번역에 능통한 분, 1990년대 말 작고)에게서 구입한 ‘半島史話와 樂土滿洲’이다. 1943(강덕10)년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에서 만선학해사滿鮮學海社가 발행한 책이다. 이 출판사는 당시 만주국의 지원으로 발행 되던 ‘만선일보’ 필진들과 만주국 조선인 문인들이 정주하던 곳이다. 시기상으로 한반도에서나 만주에서 낸 책으로는 순 한글로 조선과 만주와의 관계사 중심으로 구성된 특별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목차 첫머리는 대일본제국총리대신 장경혜, 중화민국정부주석 왕정위, 前조선총독 남차, 만주국 총리대신 장경혜, 사회 지도자 윤치호의 서문을 필두로 한 148항목의 방대한 책이다. 내용에서는 오세창의 기념 휘호를 비롯하여 역사학자 이병도, 만주건국대교수 최남선, 법학자 유진오, 작가 이광수, 민속학자 고유섭, 시인 이은상, 음악학자 함화진, 기자 차상찬, 신학자 채필근, 시인 윤해영 등의 그과 작품을 수록한 총 694면, 오늘날의 A3 싸이즈 대형 판형 책이다. 이런 책에 ‘아리랑’이 들어있었다. 속된 말로 148항목 중 1편의 시속에, 694면 중 단 한 면에, 끝에서 두 번째 쪽에서, 그것도 딸랑 ‘14줄 중에 아-리-랑’ 3자가 들어있을 뿐이다. 시 ‘樂土滿洲’, 윤해영尹海榮 작품이다. 낙토만주樂土滿洲 一五色旗 너울너울 樂土滿洲 부른다 百萬의 拓士들이 너도나도 모였네 우리는 이 나라의 福을 받은 百姓들 希望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 二松花江 千里언덕 아지랑이 杏花村 江南의 제비들도 봄을 따라 왔는데 우리는 이 나라의 흙을 맡은 일꾼들 荒蕪地 언덕우에 힘찬 광이 두르자 三끝없는 地平線에 五穀金波 굽실렁 노래가 들리누나 아리랑도 興겨워 우리는 이 나라의 터를 닦는 先驅者 한 千年 歲月後에 榮華萬歲 빛나리 제3절 2행 "노래가 들리누나 아리랑도 興겨워”에서 ‘아리랑’이 나온다. "이렇게 작품의 표제에서도 아니고 시행의 한 어휘로 나온다. 이것도 아리랑 자료로 취급할 수 있나? 또 가치가 있나? 윤해영은 어떤 사람인가?” 삼목이 이 책을 살 때 수 없이 머리 속으로 되물었던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목은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군정청 발간 독도 자료 수록 잡지 창간호와 사운 이종학 선생과 맞바꾼 ‘解放歌謠’라는 노래책 속 윤해영 작사 ‘滿洲 아리랑’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윤해영이 ‘아리랑’을 일회적인 시어로만 인식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1947년 발간된 ‘해방가요’의 ‘滿洲 아리랑’은 이렇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춤을 추네 一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니 새 하늘 새 땅이 이 아닌가 二 말발굽 소-리 끈어지면 동-리 삽살개 잠이 드네 三 젖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에 오족의 새살림 평화롭네 윤해영 시, 김기진 작곡, 백년설(1915~1980) 노래로 태평레코드사에서 1941년 12월에 음반으로 나왔다. ‘나그네 설음’과 ‘번지없는 주막’으로 명성을 날린 백년설의 유명세로 보면 만주와 한반도에서 ‘아리랑 만주’도 널리 불렸음이 짐작된다. 그런데 두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묘한 감정에 빠져 들었다. ‘만주 봉천’, 삼목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두 분 있었다. 어린 시절 설 명절이 되면 두 분이 사촌들과 함께 설을 지내러 서울에서 왔다. 3일 정도 들은 이야기들이지만 화로를 감싸고 듣던 대부분은 만주 봉천에서 살다 해방이 되어 평안도 남시(사촌 형 중에 ‘봉천’과 ‘남시’를 이름으로 갖고 있는데, 그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 온 이야기다. 삼목보다 여섯 살이나 위인 4촌 누이는 눈물을 훌쩍이며 듣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삼목이 또랑한 기억으로 담고 있는 것은 "왜놈들에게 속아서 만주로 간 거지”라든가 "그때 만주 신경은 지금 서울보다 더 좋고말고”라든가, "만주가 망하지 않았다면 일본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됐을거고, 설 쇠러 그 곳으로 왔을 것인데~ ”이다. ‘낙토만주’와 ‘만주 아리랑’, 두 작품의 여운이 묘했다. ‘속았다’와 ‘좋았다’로 읽혀지며 아리랑의 정서를 흔들었다. 이상한 이런 감정은 왜일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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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새해 새 아침에/박노해새해 새 아침에 박노해 새해에는 조금 더 침묵해야겠다 눈 내린 대지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처럼 새해에는 조금 더 정직해야겠다 눈보라가 닦아놓은 시린 겨울 하늘처럼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 기대로 세상에 새기려 한 대문자들은 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려도 보라, 여기 흰 설원의 지평 위에 새 아침의 햇살이 밝아오지 않은가 눈물조차 얼어버린 가난한 마음마다 새 아침의 태양 하나 품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세우려 한 빛나는 대문자들은 내 안에 새겨온 빛의 글자로 쓰여지는 것이니 새해 새 아침에 희망의 무게만큼 곧은 발자국 새기며 다시, 흰 설원의 아침 햇살로 걸어가야겠다 추천인: 김보성(시인) 새해 새 아침이 밝아온다. 새 희망의 날이 되리라. 가난한 마음에도 우리는 누구나 새 아침의 태양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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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권리보장법' 25일 시행...예술대 학생·작가 문하생까지 확대권리 보호 대상과 범위가 확대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마련됐다.문화체육관광부는 23일 "오는 25일부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된다”고 밝혔다.이 법 시행에 따라 예술인뿐만 아니라 예술대학교 학생이나 문하생 등 예비예술인까지로 권리보호 대상이 확대되고 ‘불공정행위’ 외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 ‘성희롱·성폭력 피해’ 등 권리보호 범위가 커져 예술인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폭넓게 보장된다.그동안 예술인의 권리보호는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인이 예술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체결한 상황에서 ‘불공정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에 따라 예술인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예술지원기관, 예술사업자 등과 관련해 예술 활동을 할 때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불공정행위’ 외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 성희롱·성폭력 피해까지도 이 법에 따라 보호받게 된다.아울러 권리보호를 받는 예술인의 범위도 확대된다.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인 예술인뿐만 아니라 예술대학교 학생이나 작가의 문하생과 같은 예비예술인도 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 예비예술인은 예술대학교 교수 등 교육을 하는 사람에 비해 약자의 위치에 있어 성희롱·성폭력 피해의 대상이 되기 쉬운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권리침해를 당한 예술인은 예술인권리보장지원센터(예술인 신문고)에 신고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심리상담과 법률상담, 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문체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피해 예술인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피해자를 충분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문체부는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권리침해 사실이 확인될 경우 관련 기관에 수사 의뢰 등 구제조치를 요청하고 시정권고·시정명령 등을 할 수 있다.‘예술인 복지법’상의 불공정행위 금지 관련 규정은 오는 25일부터 삭제된다. 2014년 6월 이후 현재까지 1470건의 신고가 있었으며, △조치(권고) 전 이행 291건, △소송 지원(대지급금 지원 포함) 650건, △시정조치 32건, △화해 조정 28건 등 1397건의 조치를 완료했다. 현재 사실조사 등 처리 중인 사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신고한 것으로 보고 처리하게 된다.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통해 예술인의 권리침해를 예방하고, 피해받은 예술인을 두텁게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라며,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세계적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창작자의 자율성 보장이 언급되고 있다. 문체부는 예술인의 자율과 창의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문체부는 예술인의 권리 및 복지 향상을 위한 2023년 정부 예산안을 전년 대비 11.3% 증액한 828억원을 편성했다.주요 사항으로 △권리침해 및 성희롱·성폭력 관련 행정조사와 피해 지원 체계 구축(13억원 증가), △창작준비금 확대 지원(2만3000명·2000명 증가), △예술활동증명 심의절차 신속화(전담인력 확충 8명) 등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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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국악의 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지난 9월 15일, 국악방송이 주최하는 ‘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 경연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되었다. 저녁 7시 생방송을 앞둔 시간, 객석은 채워졌고, 무대는 첫 출연팀의 악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기자 눈에 들어온 카메라만 8대. 무대 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것이다. 이 날 참가자들의 무대는 경연이기 이전에 객석을 흥분시키기도, 감동을 자아내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O(오) ‘0(영)’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팀과 곡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에 제한과 전형성을 거부하는 음악적 주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은 몽환적인 피아노 선율을 시작으로 하얀 화선지에, 점을 찍듯이 시작한다. 사운드가 더해지면서 묵직한 붓으로 채워가는 수묵화가 그려지는 듯하다. 장구, 대금, 피리, 꽹가리, 징 그리고 전자기타까지 선율을 타고 리듬과 어우러진다. 듣는 이는 곡의 기승전결을 따라 숨죽이며 따라갈 뿐이다. 절정에서는, 웅장한 북소리, 보컬과 어우러지는 전체 합주는 무속의례를 연상케 한다. 듣는 이의 가슴을 치듯 강렬하고도 부드럽다. 과연 그들의 곡은 가슴을 울리는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그들의 서사와 드라마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대회 첫 주자로서 ‘이 대회가 이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줬다. 오프로드 ‘듄’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 광활하고 메마른 사막을 헤쳐 가며 반복되는 여정과 모험을 표현한 곡. 빠른 비트의 가야금, 그리고 장구도 함께 속도감을 준다. 여기서 합류하는 양금의 고음은 신비감과 함께 황량한 대지를 연상케 한다. 절정에서 장구의 빠른 비트와 함께 저음과 고음 각 자리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는 양금, 가야금과 베이스기타의 향연은 가슴을 울린다. 아마도 정상에 오른 감격의 표현일 듯. 그리고 다시 속도를 되찾는 곡은 공허함과 새로운 여정을 의미할 것이다. 한 참가자의 거문고와 베이스기타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연주에 놀라웠고, 가야금의 울림과 피아노의 음색을 동시에 가진 양금의 매력에 한껏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팀 이름은 ‘색동저고리’의 제주방언이다. 곡 ‘풀어라!’는 비나리 형식을 빌리지만, 경쾌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청춘들의 고민을 풀고자 한다. 한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띄는데, 그는 아프리카 전통악기 발라폰(울림통 이용한 목재 실로폰)과 고니(나무와 조롱박으로 된 기타와 유사한 현악기)의 연주로 함께하며, 곡의 음색은 더욱 풍부해진다. 발라폰의 경쾌함과 태평소의 힘찬 울림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청춘의 고달픔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픈 청춘들의 당찬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통악기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음악적 경험이다. 구이임 ‘나븨’ ‘나븨’의 ‘븨’는 ‘때’를 뜻하는 옛말. 고장 난 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지만, 결국 시간에 젖어 녹슬고, 아늑한 기억 한 때에 머물며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서사를 표현한다. 정가 특유의 긴 호흡의 신비로운 음색과 고음의 가야금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는 판타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피아노와 가야금이 함께 곡을 받쳐주며, 남녀보컬은 고음과 저음 각 자리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야금은 때로는 타악기로 변신하거나 줄로 끄는 듯한 방법으로 고음과 저음을 구현하며, 보컬과 함께 곡 전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경기민요 ‘매화타령’을 모티브로 만든 곡. 팀 이름과 같은 ‘반쯤 핀 꽃’이라는 곡은 활짝 핀 꽃보다 그 과정에서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국악 여성 보컬의 느린 박자에서 남성 보컬의 빠르고 힘찬 타령의 합류, 이후 모든 보컬의 합창은 강렬한 시작을 알렸다. 양악 보컬이 독특한 음색으로 합류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오른다. 드럼은 비트를 더하고, 첼로는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경쾌함을 돕는다. 매화타령이 리듬과 비트를 타고, 드럼, 첼로, 기타, 피아노 등과 힘을 얻는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듣는 이의 다리는 어느새 리듬을 타고 있다. 시련과 고민을 안고 가는 청춘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듯한 곡이다.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현악기의 줄(Jul)과 주파수를 뜻하는 헤르츠(Hz)를 조합하여 만든 팀 이름. 거문고, 가야금, 아쟁 3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은 연주의 진동까지 느껴지는 섬세한 연주로 대중과 주파수를 맞추고자 한다. 그들의 곡 ‘블루(Blue)'는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전쟁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갖는다. 빠르고 반복되는 듯한 리듬은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이 갖는 특유의 음색을 보여주면서도, 현악기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음악적 언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활을 타고 흐르는 거문고의 굵직한 고음은 상처받은 이의 슬픔 같기도, 그들을 향한 위로 같기도 했고, 가야금과 아쟁은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서로 대화하는 듯한 음악적 화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완x케빈 ‘달에게’ 정가 보컬리스트와 재즈피아니스트의 만남. 드뷔시의 ‘달빛’을 오마주 한 곡. 정가 보컬의 고음이지만 속삭이는 듯한 음색이 동화적 곡에 녹아 내린다.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자리하던 동심을 떠올린다. 마치 어린이가 되어 노래로부터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 나로 모르는 울컥함이 차오른다. 달에게 속삭이듯 노래하던 ‘달아, 달아~’ 가사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피아노 반주를 타며, 동화적 감성으로 정가를 노래하는 그녀는 분명 신이 만든 악기임이 틀림없다. 이동하며 연주가 가능한 관악기의 특성을 살려 역동적이고 유쾌한 퍼포먼스가 객석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드럼과 기타의 경쾌한 박자를 타고 흐르는 태평소와 향피리 등 관악기들의 힘있고 경쾌한 음색을 즐길 수 있었다. 시종일관 역동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7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은 독주로, 때로는 협주로 익살과 재미를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꽹가리는 그 절정에서 놀이의 흥을 돋우며,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어릴 적 골목놀이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곡명은 바로 ‘가위바위보!’.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매간당(魅衎黨:매혹할 매, 즐길 간, 무리 당)은 그들만의 새로운 멋과 소리를 담은 국악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그들의 곡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를 처음 만났을 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악기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통해 실험적 연주기법을 만나게 된다. 비트는 빠르고 곡은 빈틈이 없다. 거문고는 아쟁의 활과 만나고, 아쟁은 해금의 활대와 만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색까지 만들어내는 그들의 음악은 과연 매력 그 자체였다. 강렬한 독주이자 협주를 듣는 느낌이다. 자신의 악기에 몰두하면서도 서로의 퍼즐을 맞추듯 곡을 완성해가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강렬하면서도, 듣는 이가 소리에 더욱 집중하도록 이끈다.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소리로 꽃피우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팀. ‘제be’는 새 ‘제비’를 뜻하지만, 박씨를 물고 날아와 ‘복이 되다(be)’의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강도근제 홍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사용했다. 5인 여성 소리꾼들은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질펀하고도 힘찬 판소리다. 곡의 시작은 그루브 리듬을 연상시키는 드럼과 베이스기타의 비트, 그리고 피리의 고음이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후반부에서는 마치 락을 듣는 듯한 리듬마저 느낄 수 있다. 5인의 여성 소리꾼들은 서서 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판소리를 댄스와 함께 소화해냈고, 관객들은 새로운 음악적 경험에 열광했다. 그들은 대중에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한 것이다. 창작국악을 들으면서 경험하는 새로움 중 하나가, 익숙한 소리나 가락을 들으면서, 현대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옛 것도 즐길 수 있구나, 가슴을 울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민족적 자부심과 희열은 창작국악이 주는 묘한 감동이다. 그 새로움과 자부심을 함께 느끼게 되는 그 순간, 시대의 옷을 입은 국악은 대중을 끌어들이게 되고, 이것이 창작국악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본선 경연일 한 심사위원(이슬기 가야금연주자)의 심사평에 의하면, "연주자들의 창작 역량이 강해졌고, 그 음악적 기반이 단단해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들의 음악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충분히 분석한 후에 얻은 것이며, 음악적 깊이를 갖춘 노력과 땀의 결과라는 평가를 의미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기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진정 또 다른 우리 국악의 모습이다. 전통음악이 지난 시대의 삶의 거울이라면, 창작국악은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국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 음악인이 국악을 계승하는 하나의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작국악은 일제시대 식민 지배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했다는 아픈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다만 시작은 그러했을지언정, 지금의 창작음악은 조금 더 주체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통음악을 품고,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는 참신함, 삶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곡의 메시지, 경계를 넘나드는 악기의 구성 등에서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아마도 국악이라는 세계가 주는 음악적 매력이 더해졌기에 우리의 감성을 더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에서 기자가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이들은 음악을 진정 즐기고 있었다. 아니,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면, 이토록 놀라운 창작품들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가진 음악적 에너지와 감수성, 그리고 열정이 대중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에는 어떤 음악이 우리를 들뜨게 할지, 성급한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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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 중심으로 문화재청 공모사업 신청 국비 1억원 확보,경남 밀양시는 문화재청 주관 '2023 지역 무형유산 보호지원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고 16일 밝혔다.문화재청은 매년 공모를 통해 지역에서 전승되는 국가와 시·도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속 가능한 전승 활용 기반을 마련하는 '지역 무형유산 보호지원사업' 대상지를 선정하고 있다.시는 밀양아리랑을 중심으로 지역 무형문화유산 활용 방안 신청서를 제출해 높은 평가를 받으며 국비 1억원 포함, 총 3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게 됐다.내년에는 밀양아리랑을 주제로 지역 무형유산 행정 역량 강화와 학술대회 개최, 무형유산 협력 네트워크 구축, 관광 자원화와 홍보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세부 사업을 시행하게 된다.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인 백중놀이, 도지정 무형문화재인 무안용호놀이, 감내게줄당기기, 법흥상원놀이, 작약산 예수재를 비롯한 비지정 무형문화재의 가치 실현 방안까지 포괄하고 있어 지역 문화유산 역량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시 관계자는 "이번 공모사업 선정을 계기로 지역 대표 문화브랜드인 밀양아리랑이 대한민국 무형문화재의 중심이 되고, 시가 부·울·경 무형문화재 활성화 허브 도시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삼문동은 옛 법원·검찰청 대지에 국립무형유산원 밀양분원과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을 건립 중으로 아리랑의 고장 밀양이 명실상부한 전통 무형유산 도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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